뚜껑을 아직 열지 않았지만 캡슐에 묻은 시료를 간략 분석했을 때 탄소원소와 물분자가 발견되었다. 생명체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지만 물은 화학반응에서 가장 흔한 분자고 탄소는 원소보다는 분자가 중요한데 탄소 분자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다. 추측컨대 탄소분자는 기체로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으로 합성되지만 이번 시료는 고체이므로 탄산이온(CO3)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항공우주국이 찾고 있는 물질은 메탄보다 정교한 탄소화합물이다. 3년 전 일본도 소행성 류구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유전체 RNA의 구성성분인 우라실을 검출한 적이 있다.
놀라운 발견이지만 류구가 지구를 지나가면서 혹은 시료 처리과정에서 오염될 가능성이 높아 더 이상 토론은 무의미하다. 베누가 다음 목표를 향해 날아간 아포피스 조성과 비교 분석하면 생명체 발생 논의는 재개될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일본, 캐나다에서 시료를 나누고 오염을 피하려 대부분 베누 샘플을 질소로 채워 보관한다. 질소 환경에서는 시간이 정지된 듯이 시료가 불변한다. 시간의 정지는 이집트의 미라, 청동기 시대의 유물에서도 일어난다. 지층이나 암석도 시간의 풍화를 견디며 왔다. 쉽게 부패되는 동식물을 생각하면 수천 년을 견딘 미라가 신비스럽지만 부패는 절대 시간이 아니라 조성된 주변 환경에 달려 있다.
기술사회에서 시간을 정지시켜 저장할 유물이 사용후 핵연료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유용한 핵분열 생성물을 함유하지만 핵확산을 우려한 국제사회는 재처리 없이 영구 처분되기를 원한다. 현재 우리나라도 가동 중인 발전소에 임시 저장되어 있으며 원자력 발전소가 수명을 다하면 영구적 처분장에 옮겨진다.
40년 원전을 운영한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 처분 부지를 아직 선정하지 못했다. 여야가 3개의 고준위 폐기물 특별법을 발의했고 거의 합의했지만 발전소 내 임시저장 시설 용량을 두고 법제정이 미뤄지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발전소에 비하며 위험성은 거의 없지만 수만 년 묻어두므로 주민들도 부담스러워한다.
긴 시간 동안에 처분장에는 지하수가 유입될 수 있고 지진도 한두 번 일어날 수 있으니 모든 자연재해를 대비해야 한다. 원자력계는 20년 전부터 처분장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이론적으로 예측하고 지하 실험동굴에서 사용후 핵연료의 거동을 관찰하여 왔다. 관찰결과는 예측과 동일하므로 처분장의 건전성은 확신한 바 있다. 물론 부지와 시공이 적절하고 잘 관리될 때 이야기이다.
핀란드는 지하 500미터 암반층에 온칼로 지하 처분장을 지었고 곧 운영할 예정이다. 스웨덴이나 프랑스도 지하 심층 처분장을 건설 중이다. 땅속 깊이 건설되어 있으니 방사능이 지표면으로 스며나올 리 없고 지표면이 홍수에 침식되더라도 사용후 핵연료가 노출될 리 없다.
사용후 핵연료는 구리 용기에 담겨 보관되고 용기 외부에는 진흙과 같은 벤토나이트로 채워진다. 벤토나이트는 지하수를 흡수하고 금속 이온을 잡아두는 능력이 탁월하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주 탐사선을 보내고 수만 년 저장할 사용후 핵연료를 배출하는 인류가 미련해 보일 수도 있다. 기술문명보다는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자연에 머무른다고 지구가 영속하다는 보장은 없다. 소행성과 충돌로 지구가 조각나 소행성 벨트에 뿌려질 수도 있고, 운 좋게 살아남아도 인류도 공룡처럼 멸종할 수도 있다. 지구에 악영향을 줄이면서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이다. 시간을 멈추는 저장 기술은 그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