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강력한 대출규제 수단으로 꼽히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범위를 더욱 넓히고 대출이 과도하게 늘어난 은행을 밀착관리하기로 한 것은 가계부채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다. 오히려 지난달 전체 금융권 가계 빚 증가폭은 2년 여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금융당국과 통화당국의 잇따른 가계부채 증가 경고에도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금리 개입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권을 겨냥한 날선 비판 이후 상생금융 압박의 일환으로 주요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내리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향후에도 가계대출 감소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10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86조6000억 원으로 한달 새 6조8000억 원 증가했다. 전달(4조8000억 원)보다 증가 폭이 2조 원 넘게 확대됐다. 7개월 연속 증가다. 4월 2조3000억 원 늘어난 이후 5월 4조2000억 원, 6월 5조8000억 원, 7월 5조9000억 원. 8월 6조9000억 원 등 지속적으로 불어났다. 9월 소폭 감소했다가 한달 만에 증가전환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이날 공개한 ‘10월 가계대출 동향’에서도 은행과 제2금융권을 포함한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은 6조3000억 원 순증했다. 9월(2조4000억 원)보다 증가 폭이 크게 늘어났다. 특히 가계대출 증가폭이 25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대출 증가폭이 가팔라진 이유를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찾는 시각이 많다. 가계대출을 잡겠다고 금리에 개입하는 등 시장 질서를 파괴하면서 생긴 혼란이라는 지적이다. 콘트롤 타워의 부재로 인한 한국은행과 금융당국 간 정책 엇박자도 요인으로 꼽힌다. 한은은 연초부터 가계부채를 잡아야 한다며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고금리 정책을 펼쳤다. 반면 최근 금융당국은 이자 장사를 지적하면서 ‘상생금융’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이에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금리를 낮추고 있다. 50년 주담대 상품을 두고 벌어졌던 헤프닝도 오락가락 정책을 대변한다. 애초에 차주 이자 부담 완화를 위해 정책상품 만기를 50년까지 확대했고, 은행들도 이에 합류했다. 하지만 가계대출이 늘자 50년 주담대 상품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결국 50년 주담대는 모습을 감췄다.
정부는 연내 변동금리 스트레스 DSR을 도입하는 등 가계대출 관리 강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상생금융 시즌2를 준비하라며 은행권을 압박하는 등 정책 엇박자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락가락 금융정책에 은행권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를 해결하기 위해 DSR 강화 등의 조치는 필요하나 과도하고 성급한 대책은 실수요자들의 피해와 금융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다”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이날 이례적으로 Q&A 자료집까지 배포하며 “과거 어느시기와 비교해도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어 “과거 10년 연평균 가계부채 증가율이 6.6%에 달하는 것에 비해 현 정부 들어서는 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