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움직임에 발맞춰 한국도 2030년 탄소배출 40% 감축 목표를 제시했고,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서울시도 온실가스 배출량 4600만t 가운데 70%를 차지하고 있는 건물의 탄소중립을 목표로 선도적인 정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시장 참여를 유인할 기준과 권한이 부족해 ‘반쪽’ 효과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물의 탄소중립은 크게 설계와 사용을 두 축으로 한다. 건축 단계에서 에너지 절감 기법을 활용해 효율과 자립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사용 단계에서 소비 관리를 통해 불필요한 낭비를 최소화해야 한다.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2007년 지자체 최초로 ‘녹색설계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건축 단계에서 규모에 따라 에너지효율 등급과 신재생에너지 생산 및 이용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해당 기준에 따라 500㎡ 이상의 공공건물은 제로에너지빌딩(ZEB) 등급이 적용된다. ZEB는 효율적인 설계를 통해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연간 에너지사용량과 생산량이 최대한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건축물을 말한다. 1~5등급으로 나뉘는데 가장 낮은 5등급은 에너지효율등급 1++ 이상, 자립률 20%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ZEB의 에너지 절감효과는 8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민간건물이다. 현재 10만㎡ 이상 건물은 환경영향평가 대상으로, ZEB 적용을 받는다. 적은 규모로 확대가 필요한데 정부는 2025년부터 500㎡이상 신축 민간 건축물에 ZEB 적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제 부담 논란이 커지면서 관련 법 개정에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사용단계에서 에너지소비 관리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건물온실가스총량제’를 추진하고 있다. 건물 용도에 따라 총 에너지사용량에 제한을 두는 내용이다. 그러나 총량제 시행에 필수적인 목표에너지원단위 자체가 전무한 실정이다. 평가 기준이 없으니 규제도 할 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지고 있는 목표에너지원단위 설정 권한을 지자체에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법에 따르면 산업부 장관이 목표에너지원단위를 설정해 고시할 수 있다. 지난해 서울시는 산업부와 에너지효율 혁신 MOU를 맺었다. 목표에너지원단위 설정 권한을 지자체에 넘겨준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관련 법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로 진척이 없다.
해외의 경우 건물 소유주의 에너지 사용량 보고 의무화, 효율 기준 적용, 벌금 등 규제 수단을 토대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물에 대한 규제 권한이 없다. 규제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효과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이인근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은 “기후위기는 미래의 문제가 아닌 현재 풀어야 할 숙제”라며 “건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이 전체 비중에서 70%를 차지하는 만큼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에너지효율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뉴욕이나 유럽처럼 건물의 에너지사용량 신고제를 조기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지방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지역별 특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지자체가 전략을 짜고 적용하기 수월하다는 이유에서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기온을 2도 낮추는 걸 목표로 제시한 2015년 파리기후협정도 지방정부 주도를 명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