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러 농업은행 자회사 SWIFT 재연결’ 조건 제시한 상태
흑해 곡물 수출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러시아가 흑해 곡물협정 종료를 이틀 앞둔 15일(현지시간)까지 연장 요청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거부로 해당 협정이 연장되지 못한다면 글로벌 식량 위기가 재고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NBC 등에 따르면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은 전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흑해 곡물 협정 연장 여부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답변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난 1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러시아 농업은행(Rosselkhozbank)의 자회사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 시스템에 다시 연결해 주는 것을 대가로 협정을 연장하자는 제안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6월 농업은행의 SWIFT 연결을 차단했다.
뒤자리크 대변인은 “논의가 이뤄지기는 했다. 왓츠앱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고, (메시지 서비스) 시그널을 통해서도 메시지를 교환했다”며 “우리는 여전히 편지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유엔과 튀르키예 중재로 지난해 7월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을 보장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협정은 5월까지 세 차례 연장됐고, 세 번째 연장된 협정 시한은 이달 17일까지다. 러시아는 협정을 연장할 때마다 ‘러시아와 유엔이 지난해 7월 합의한 러시아산 곡물·비료 수출 촉진안은 이행되지 않고 우크라이나산 곡물만 지원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해왔다.
현재 러시아는 흑해 곡물 협정에 대해 어떠한 공식 성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유엔의 서한을 보지 못했다면서 요구 사항이 충족되지 않으면 협정을 탈퇴할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흑해 곡물 협정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글로벌 곡물 시장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 말 기준 전 세계 곡물 수출의 4분의 1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글로벌 곡물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크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협정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끔찍한 침략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면 최소한 흑해 곡물 협정을 연장해 전 세계에 식량을 공급해 가격을 낮추고 공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흑해 곡물협정이 종료될 가능성을 대비하는 ‘플랜B’가 논의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최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우크라이나가 동유럽을 가로지르는 하천인 다뉴브강을 통한 곡물 수출을 확대하는 등 대체 수출 경로 확보를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해당 경로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매월 약 200만 톤(t)의 식량을 수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가 흑해를 통과하는 자국 곡물 수출선을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보험처럼 5억 달러 규모의 보증기금을 조성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