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편한데 종류가 왜 안 늘어나는지 모르겠네요.”
한밤중에 갑자기 열이 나거나 소화불량에 시달리더라도 편의점을 찾으면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다. 품목은 제한적이지만 ‘편의점 상비약’으로 불리는 안전상비의약품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 시간대나 공휴일에 의약품을 사기 어려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2012년 안전상비의약품 제도를 도입했다. 일반의약품 가운데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하며, 환자 스스로 복용할 수 있는 것으로, 성분·부작용·함량·제형·인지도 등을 고려해 최대 20개 품목까지 지정할 수 있다.
현재 판매되는 안전상비약은 해열진통제 5종, 소화제 4종, 종합감기약 2종, 붙이는 소염진통제(파스) 2종의 총 13개 품목이다. 제도 도입 당시에는 시행 6개월 후 중간 점검을 거쳐 시행 1년 후에는 품목을 재조정하기로 했으나, 10년이 넘도록 점검이나 품목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안전상비약에 대해 국민은 ‘편리하다’라는 인식이 압도적이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안전상비약 도입 10년을 맞아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을 구입할 수 있어 이전보다 편리하다’는 응답이 96.8%, ‘지속적으로 구입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95.5%로 나타났다. 특히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수도권 외 지역일수록 안전상비약의 편익을 더 크게 체감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안전상비약의 품목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 역시 꾸준하다. 가장 수요가 높은 품목은 설사 증상을 완화하는 지사제이며, 이밖에 화상치료제, 제산제 등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부분 갑작스러운 상황에 필요한 의약품이다.
그러나 약사단체의 강한 반발로 안전상비약 확대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형편이다. 대한약사회는 약물의 오남용으로 국민의 건강 수준이 저하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전체 인구 대비 약국 숫자가 충분해 약국 접근성이 매우 높아 안전상비약을 늘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약국은 국민 2200명당 1개소가 운영되고 있어 산술적으로는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이는 의약품 구입에 대한 지역적·시간적 측면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단 지적이다. 중소도시로 갈수록 약국 숫자는 줄어들고, 약국이 영업하지 않는 심야 시간대에는 안전상비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