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재벌 총수 지정 기준 마련…자의적 판단 '불확실성' 여전

입력 2023-06-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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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인 판단 기준 지침 제정안 행정예고…지정 이의제기 제도 신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이투데이)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이투데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의 동일인(그룹 총수) 지정하기 위한 5가지의 판단 기준을 마련하고, 대기업집단 지정자료 제출 전 동일인을 확인하는 '동일인 확인 절차'를 명문화한다. 동일인 판단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기업집단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위한 취지다.

그러나 재계 안팎에서는 공정위가 제시한 동일인 판단 기준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동일인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여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 제정안을 30일부터 내달 20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매년 5월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 원 이상)·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을 지정해 자료제출 및 공시 의무,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 금지, 상호출자제한 등 각종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동일인(자연인 또는 법인)을 지정하고, 동일인 및 동일인 친족 등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지분 소유 현황 등을 토대로 규제를 받는 계열사 범위를 정한다. 동일인은 대기업집단 제도가 도입된 1986년부터 사용된 용어다.

그동안 학계, 재계 등에서 동일인 판단에 필요한 기준 및 동일인 확인 절차가 부재해 공정위의 동일인 선정 과정이 불투명하고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마련된 제정안은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기업집단의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 △기업집단 내ㆍ외부적으로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 5가지의 동일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판단 시에 최다출자자가 자연인이 아닌 계열회사 또는 기관 투자자일 경우 최상단회사에 대한 직접 지분 이외에 국내외 계열회사를 통해 소유하고 있는 간접 지분도 합산해서 자연인 중에 최다출자자가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토록했다.

기업집단의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의 경우 대표이사 등 임원의 임면, 조직 변경, 신규 사업투자 등 주요 의사 결정이나 업무 집행에 지배적인 영향력 지속적으로 행사하는 자가 기준을 충족하는지 보도록 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5가지 기준 중 '기업집단의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가 중요한 실질적인 기준이 될 것"이라며 "나머지 기준들은 실질적인 기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참고사항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일인 판단 시에는 각 기준에 해당하는 자연인이 누구인지 고려하되, 각 기준에 해당하는 자가 상이할 경우 이 5가지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수 있다"며 "만약 기준에 부합하는 적절한 자연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기업집단의 국내 최상단회사 또는 비영리법인이 동일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정안은 동일인 변경 사유와 관련해 동일인이 사망한 경우에는 동일인을 변경해야 하고, 의식불명 등 일신상의 사유, 상당한 지분의 매각, 의결권 행사의 포괄 위임, 재직 중이던 주요 직위에서의 사임 등 동일인이 더 이상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볼만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에는 동일인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동일인 변경 사유가 발생한 경우 원칙적으로 다음 번 기업집단 지정 시에 동일인을 변경하되, 변경 사유가 기업집단 지정 시점에 임박해 발생해 물리적으로 당해 연도 지정이 어려우면 다음 번 기업집단 지정 시까지 현재 동일인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제정안은 지정자료 제출 전 동일인을 확인하는 절차인 '동일인 확인 절차'를 명문화했다. 공정위는 동일인 확인 및 변경에 소요되는 기간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해 해당 절차를 2021년부터 3년간 실무적으로 운영해왔다. 명문화된 확인 절차는 '협의 대상 선정→자료제출→협의 실시→동일인 확인 및 통지' 순으로 이뤄진다. 동일인을 변경하고자 하는 기업집단은 이 절차에서 공정위에 동일인 변경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기업집단이 동일인 변경 의사를 표명하지 않더라도 공정위가 동일인 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직권으로 협의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아울러 기업집단의 절차적 권리를 제고하기 위해 공정위의 동일인 확인 결과에 이의가 있는 기업집단의 경우 공정위에 재협의(이의제기)를 요청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됐다.

공정위는 제정안 마련으로 동일인 판단의 투명성 및 객관성이 제고돼 수범자들의 불확실성을 상당히 해소하고,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재계 안팎에서는 공정위가 마련한 동일인 판단기준 역시 공정위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결정되는 구조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이번 지침이 아주 명확한 구체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모호성 부분이 존재한다고 본다"면서 "5가지 판단기준과 더불어 다른 기준도 시의성 있게 지속적으로 검토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동일인 지정 기준 마련과 관련해서는 "올해 기업집단 지정 시 실시한 외국국적 보유현황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산업부 등 관계부처와 충분히 협의해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기업집단인 쿠팡의 동일인이 미국 국적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실질적 지배자)이 아닌 법인으로 매년 지정되면서 외국인 동일인 지정 기준 마련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공정위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우려해 자연인인 김범석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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