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박 7일 미국 국빈방문을 마쳤다. 핵협의그룹(NCG) 출범과 8조 원 규모 투자유치 등 성과들도 있었지만, 일부 현안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핵심인 워싱턴선언을 통해 발표된 NCG에 대한 아쉬움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워싱턴선언은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정례화와 함께 핵무기 운용에 대한 협의체 창설이 핵심이다.
다만 NCG는 미 핵무기 운용에 한국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실질적인 결정권은 여전히 미국에 있고 국내에 핵무기를 배치하진 않는다. 나토처럼 핵무기를 자국 전투기에 실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윤 대통령이 앞서 밝혔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핵기획그룹(NPG)보다 강력한 조치”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아쉬움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애초 용산 대통령실에선 “사실상 핵 공유”라고 설명했지만, 미 정부에서 “핵 공유는 아니다”라고 부인하는 시각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윤 대통령은 하버드대 대담에서 “핵이 포함된 한미상호방위 개념”이라며 미 정부와 결을 같이 하는 입장을 정리했다.
이로써 그간 여권에서 제기됐던 ‘자체 핵무장’이나 ‘핵 공유’는 어렵게 됐다. 워싱턴선언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를 명기하면서 핵무장 가능성은 차단됐고, 핵 공유도 미 정부가 직접 부인하면서다.
결국 북한 핵·미사일 대응에 발전은 이뤘지만, 북한·중국·러시아에는 큰 자극을 주게 됐다. 북한은 ‘핵 전쟁 책동’이라며 핵·미사일 고도화의 정당화 명분으로 삼았고, 중국에선 ‘핵 비확산 체제 파괴’라는 비판을 내놨으며, 러시아는 ‘군비경쟁’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연구소 교수는 “NCG로 우리 입장을 반영할 제도적 틀이라지만 순전히 미국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 실제로 반영될지는 모른다”며 “그래서 북핵 위협에 대응할 충분한 제도인지는 굉장히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북압박 공조 측면에선 성과를 냈지만 그 외에 긍정적인 성과는 거의 없다. 숙명적으로 주변국가와 골고루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명하게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는 ‘쉬운 외교’를 택한 것”이라며 “합의 이행 과정에서 북중러의 엄청난 도전에 직면할 것인데, 이를 어떻게 대처할지에 따라 다시 한 번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 기가팩토리 유치는 윤 대통령이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를 대면해 거듭 요청했다. 윤 대통령이 특별 제작한 브로슈어를 건네며 입지·세제·규제 지원을 약속하고 머스크도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한국은 ‘후보지’로 남아있다.
대통령실은 애초 윤 대통령 국빈방미 전에 기가팩토리 유치 협의를 진전시킨다는 목표였다. 이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와 유치 신청을 한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국회에서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윤 대통령이 재차 '세일즈 외교'에 나서며 박차를 가한 것이다.
이는 기가팩토리 유치 면에서 우리나라가 경쟁국에 비해 투자환경이 쉽지 않아서다. 한국과 거리가 가까운 중국 상하이에 이미 기가팩토리가 있는 데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가 니켈 등 자원 조달과 시장 규모, 또 싼 노동비용까지 확연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를 극복키 위해 입지·세제·규제 지원을 윤 대통령이 직접 약속한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머스크가 윤 대통령을 만나 내놓은 발언은 테슬라에게 한국이 중요한 시장이라서 한국 고객들 입장을 생각한 호의적 표현이라고 본다”며 “자원과 시장규모는 물론 우리나라는 ‘노조 리스크’가 크다. 특히 정권에 따라 친노조 정책이 시행돼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1997년 GM 공장이 들어선 이래 외국기업의 자동차공장이 들어서지 못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세제·입지·규제 지원은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져 후보지로 검토되는 조건 정도만 되는 것”이라며 “대통령실에서 브로슈어를 통해 제안하는 혜택들을 전문가들과 논의해 구체적인 조건들로 만들어야 유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국빈방미에서 첫 일정으로 넷플릭스 CEO와 만나 한국 콘텐츠에 4년 간 한화 약 3조3000억 원에 달하는 25억 달러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거기다 한미 콘텐츠제공사업자(CP)들이 모이는 글로벌 영상콘텐츠 리더십포럼에도 참석하면서 국내에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소송을 벌이고 있는 ‘망사용료’ 문제가 언급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공식석상에서 망사용료는 거론되지 않았음은 물론 대통령실이 나서 관련 논의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넷플릭스의 막대한 투자 약속을 받으면서 망사용료를 내지 않으려는 입장에 힘이 실리게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은 만큼 망사용료 부과에 반대해온 미 무역대표부(USTR)도 이번 국빈방미 기간에 관련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애초에 망사용료 문제를 의제로 올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의 소송 판결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이를 주요 이슈로 끌어올리기는 부적절하다는 판단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윤 대통령이 넷플릭스의 투자 약속을 받는 등 긍정적인 분위기에 USTR도 말이 없는 걸 보니 망사용료 문제는 아예 의제로 올리지 않은 것 같고, 법원 판결을 앞두고 대통령이 무어라 말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2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유럽연합(EU)이 망사용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임에도 정치적인 판단으로 완곡히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법원 판결이 나와야 대통령이나 정치권에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법원에서 망사용료 권리를 인정하면 어느 수준의 사용료를 낼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외에 주요 의제로 올랐던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와 반도체지원법의 경우에도 공동성명에서 상호 호혜적인 협의를 명기하고 논의에 나선 상태이긴 하지만, 아직 가시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아 아쉬움을 낳고 있다.
여러 경제·안보 분야 성과들이 즐비하지만 주요의제와 관심을 모으는 이슈들에 대한 지적들이 잇따르면서 향후 한미 합의 이행 추이가 최종적인 평가를 판가름할 전망이다. NCG는 분기마다 한 번씩 협의를 할 예정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기가팩토리 유치도 향후 협의 상황에 따라, 망사용료는 판결 이후 정부 대처에 따라, IRA와 반도체지원법도 한미 당국의 최종 협상 결과에 따라 사후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