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논란이 된 포스코홀딩스 주소 이전에서 기업의 정치 외압인지 정치권의 대의명분인지 엿볼 수 있다.
포스코홀딩스가 논란이 됐던 서울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다음 달 17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확정하기로 20일 열린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지난해 초 포스코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임시주주총회에서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의 주소지를 서울 포스코센터로 결정한 지 1년 만에 다시 번복한 것이다.
애초 포스코홀딩스가 주소지를 서울로 결정한 것은 그룹 지주사의 역할뿐만 아니라 친환경 소재·에너지 중심의 글로벌 인프라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투자회사로서의 업무 효율성과 인재 확보가 포항보다 서울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북 포항 시민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거센 반발을 했다. 당시 대통령선거 여야 후보자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까지도 나서서 포스코홀딩스의 주소지 서울 이전을 반대했었다. 이들은 반대 이유로 지방 균형 발전 위배를 내세웠지만 실제는 약 51만 명의 포항시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였다.
경제적 파급효과를 따지면 포스코홀딩스는 투자형 지주사여서 주 수입원이 계열사에서 받는 배당금과 투자를 통해 얻는 이익금이다. 배당금은 계열사 이익잉여금을 재원으로 하므로 과세되지 않아서 서울로 주소지를 옮기더라도 포항시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 오히려 투자회사로서의 업무 효율성과 인재 지방 기피 현상을 따지면 서울이 기업 경영 측면에서는 더 유리하다. 포항시도 이를 의식한 듯 지역 전문가들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서 포스코홀딩스보다 함께 수도권에 설립되는 미래기술연구원에 초점을 맞춰 미래기술연구원의 포항 설립 시 경제적 효과를 더 부각했다.
정치권이 주장하는 지방 균형 발전이 이유라면 포항보다는 더 낙후된 광양제철소 지역에 포스코홀딩스를 설립하는 것이 맞다. 정치권은 포스코홀딩스가 서울 주소지로 강행 출범하자 최정우 포스코 회장 자진 퇴임으로 방향을 선회해 압박했다. 역대 정권 교체기마다 포스코 CEO 흔들기에 나섰던 것처럼 정치권은 최 회장의 입지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오죽하면 태풍 힌남노에 따른 포항제철소 침수로 인한 공장가동 중단의 책임을 물어 최 회장 용퇴를 주장할까. 결국 정치외압에 못 이겨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상당수 사외이사 반대에도 주소지 포항 이전을 주총 표결에 맡기기로 했다.
이 같은 기업에 대한 정치외압은 포스코뿐만 아니다. 연임이 확정돼 주총 절차만 남겨 뒀던 구현모 KT 대표이사의 선임과 관련해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 정치권에서 후보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차기 CEO 선임 절차가 다시 원점 재검토됐다. 또 최근 시중 은행장이나 금융지주사 회장 선출 과정에서도 정치외압이 작용하지 않았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은 기업 인사뿐만 아니라 지방 균형 발전 명목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강원도 원주에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원주 공장 설립은 우수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은 데다 관련 인프라 구축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아서 사실상 설립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토로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원주시장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경기침체와 수요 둔화로 대한민국 경제가 적신호가 켜진 상태에서 정치권이 기업에 마구잡이 외압을 넣는 것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물론 정치권의 말을 빌리자면 투명한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자 도덕적 자질 부족을 막아 국민을 위한 기업 만들기를 위한 것이라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시기여서 자제했으면 좋겠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패권전쟁에서 우리 기업이 살아남기도 힘든 상황이다. 기업이 일할 수 있게끔 정치권이 나서서 기업 투자나 연구개발 세제 지원을 더 해주거나 인프라 구축 지원을 더 해줘야 할 때이다.
5년의 임기 정권이 50년, 100년 후의 미래 성장을 고심하는 기업에 어설픈 훈수를 두기보다 성장 동력 마련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정권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