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지금 원자력!(Nuclear Now!)’이 찬사를 받았다. 스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원전이 현재 탄소 배출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며 원전 위험성이 그동안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사회 비판적인 영화를 많이 만든 스톤 감독이 원전에 반대하는 환경보호론자들의 주장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 와중에도 지난해 6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원전 9기를 건설하는 계약을 맺었다.
두 사례는 기후변화 대응의 절박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빚은 에너지 대란 위기 속에 원자력발전으로의 복귀는 피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분석에 따르면 원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재생에너지를 대표하는 태양광의 4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기후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는 풍력이나 태양광보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아울러 전 세계 인구 증가와 전기차 보급 확대, 신흥국 경제 성장으로 2050년까지 전력 수요가 지금의 최소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면 원자력 에너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기에 원전은 미세먼지 같은 오염물질도 대기 중으로 방출하지 않는다.
이런 원전 필요성과 이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각국은 갈 길이 멀다. 가장 아쉬운 점은 아직도 땜빵 정책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노후 원전의 가동 연장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 대부분이 일반적인 설계수명인 40년을 넘어 원자로를 계속 가동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일부 원자로에 대해서는 최대 80년까지 운영하는 방안을 찾는 움직임이 있다. 심지어 100년에 걸쳐 계속 가동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연구마저 진행되고 있다.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가동하는 원자로의 3분의 2가 설계 또는 허가받은 것보다 더 오래 가동하게 된다.
아무리 원전이 안전하다지만, 이렇게 오래 가동되면 사고 위험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블룸버그도 “노후화가 진행되는 원전이 적절하게 보수·수리되지 않으면 사고 위험성은 분명히 커지며 가능성이 매우 낮더라도 일단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 대참사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각국이 이런 무리수를 두는 이유도 분명하다. 서구권에서는 수십 년간 원전에 대한 거센 반대로 투자가 줄어들고 신규 원전 건설이 감소했다. 설령 지금 착공에 들어가도 대규모 원전 건설에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현재 건설 중인 신규 원전도 중국 등 아시아에 몰려 있다. 탄소 감축이 시급해 신규 원전을 여유 있게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임시미봉책에만 기댈 수는 없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도 많다. 각국 정부는 우선 원전산업과 관련된 규제를 쇄신해야 한다. 현재 규제는 원전 산업 초창기인 수십 년 전에 확립된 것이고 그 후 별다른 변화도 없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개선해 지나치게 긴 승인 프로세스를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지부진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설립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원전이 처음 가동된 게 70년이 넘었는데 현재 최소 수천 년을 보관해야 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만든 나라는 핀란드가 유일하다. 설령 전 세계가 탈원전을 택한다 하더라도 현재 막대하게 쌓여 있는 방사성 폐기물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시행하는 것은 우리가 후손들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미국 스타트업 딥아이솔레이션(Deep Isolation)은 지하 수백m에서 수㎞에 이르기까지 깊숙하게 시추공을 뚫어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는 심부 시추공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소형모듈원자로(SMR)에서 심부 시추공 기술에 이르기까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원전 산업의 혁신에 도전하는 이런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에 기업은 물론 정부가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제 원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당위성 논란을 넘어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의 대안으로 부상한 원전을 효과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