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도 저런 기사 작위 받아야지 않겠나?”
5년 전이었다. 회사 임원이 지나가면서 툭 던진 말이 마음에 박혔다. 프랑스 3대 와인 기사 작위의 존재를 처음 안 순간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한국 시장이 ‘와인 불모지’였던 시절, 홀로 편의점 주류기획으로 버티던 때였다. 5년 후 반전 드라마가 쓰였다. 와인 기사 작위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코망드리’를 거머쥔 김유미(39) GS리테일 주류기획팀 MD 이야기다. 프랑스에서 6박 8일간 보르도, 샹파뉴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갓 돌아온 그를 만났다.
2008년 GS리테일에 입사해 편의점 사업부에서 첫발을 뗀 김 MD의 주특기는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일이다. “그게 되겠어?”라는 주위 의심을 성과로 증명하며 “그게 됩니다”란 확신으로 뒤집어버린다. OFC(편의점 영업관리 담당)로 근무할 때도 그랬다. 김 MD는 “강남, 서초 구역을 맡았었다. 땅값이 비싸 매장면적이 작아 실적 내기 어렵기로 정평이 난 지역이었다”라면서 “영업이 잘 맞았고 점포 특성에 어울리는 마케팅을 진행했고 결국 전국 매출 탑10을 찍었다”라고 했다.
김 MD의 주류 인생이 펼쳐진 건 2016년부터다. 막 꿈틀대는 국내 와인시장 성장세에 발맞춰 사내에 신설된 주류MD에 전격 단독 발탁된 것이다. 고생길도 동시에 활짝 열렸다. 와인수입사들은 편의점에 비우호적이었고, 야심차게 준비한 고가 와인 마케팅이 실패하기도 했다. 그는 “와인하면 마트, 백화점이던 시절이다. 우리는 ‘맥주나 파는’ 곳에 다름없었다. 거래처로부터 선제안은 커녕 진척도 잘 안 됐다”라면서 “6년 동안 1명이 홀로 근무했을 정도로 혹독했다”라고 회상했다.
편의점에 대한 편견을 부수고 싶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김 MD는 “가격으로든, 뭐든 편의점에 기대하는 게 있다. 하지만 편의점도 20~30만 원짜리 와인이 팔리고, 편의점도 다를 수 있음을 꼭 알리고 싶었다”라고 했다. 고가와인 20~30병을 들였다가 2~5병만 팔린 ‘쪽박’ 경험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대대적인 마케팅 수정, 스마트예약 서비스 도입으로 탄생한 와인들이 줄줄 대박이 터졌다. 차가웠던 수입사들이 회사에 줄을 섰고, 김 MD 홀로 일하던 조직은 현재 5명으로 몸집을 불렸다.
그렇게 고군분투 시절을 통과해 거머쥔 프랑스 코망드리 와인 기사 작위 수상에 그는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코망드리는 보르도 와인 발전에 기여했거나 자국 내에서의 영향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물에게 프랑스 보르도 와인 협회가 수여하는 기사 작위 중 하나다. 편의점 업계로는 김 MD가 최초고, 올해 수상자 중 한국인으로는 유일하다. 지난해에는 임직원 6000여 명 중 30명에게만 수여하는 ‘올해의 GS리테일인상’도 받으며 겹경사가 터졌다. 그는 “5년 전 가능할까,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감회가 남다르다”라고 했다.
통념을 부숴 판을 새로 짜는 ‘게임체인저’를 꿈꾸는 김 MD가 깨고 싶은 또 다른 편견은 뭘까. 그는 “지금 편의점 와인 시장은 전반적으로 양극화돼 있다. 한쪽에는 20, 30세대, 다른 한쪽에서는 실질 구매력과 고급 취향을 갖춘 40, 50세대가 있다. 균형점을 잘 찾는 게 과제”라면서 “편의점의 미래가 MZ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 문턱이 낮은 로제 와인 등을 강화해 잠재 와인인구를 포섭하고 고급화한 소비층을 겨냥해 지금까지 안 해본 새로운 와인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