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설계한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가 "윤석열 정부와 맞지 않는다"고 거취를 언급한데 대해 "크게 실망했다"며 "생각이 다른 제 의견에 총리께서 귀를 닫으시겠다면, 제가 KDI 원장으로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고 6일 밝혔다.
정부의 압박에 사실상 자진 사퇴 수순을 밟는 모양새다.
홍 원장은 6일 발표한 '총리 말씀에 대한 입장문'에서 "총리께서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사이에 다름은 인정될 수 없고 저의 거취에 대해 말씀하신 것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지난달 28일 기자단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홍 원장의 거취와 관련해 "소득주도 성장 설계자가 KDI 원장으로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바뀌어야지. 윤석열 정부랑 너무 안 맞는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수석인 홍 원장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설계했고 지난해 5월 KDI 원장에 취임했다. 2월에는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일자리 축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옹호해왔다.
홍 원장은 "국책연구기관은 연구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원장의 임기를 법률로 정하고 있다"며 "이는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을 넘어 오로지 국민을 바라보고 연구하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주 총리께서 연구의 중립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법률의 취지와 달리 '같이 갈 수 없다, 바뀌어야 한다'고 하신 것은 연구의 중립성과 법 취지를 훼손시키는 부적절한 말씀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총리께서 저의 거취에 관해 언급하실 무렵, 감사원이 KDI에 통보한 이례적인 조치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홍 원장은 "만약 총리께서 KDI와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연구에만 몰두하고 정권의 나팔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국민의 동의를 구해 법을 바꾸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며 "정권이 바뀌고 원장이 바뀐다고 해서 KDI와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보고서가 달라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떠나더라도, KDI 연구진들은 국민을 바라보고 소신에 따라 흔들림 없이 연구를 수행할 것으로 믿고 있다"며 "연구기관의 자율성은 존중돼야 한다. 그래야만 KDI와 국책연구기관들이 국민의 미래를 여는 연구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KDI 측은 홍 원장이 당장 사퇴 의사를 표명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KDI 관계자는 "결국에는 총리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원장님이 생각하시는 부분을 말씀드렸는데도 생각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때는 고민해볼 수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