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복합위기’(multiple crisis)를 넘어 ‘다중위기’(polycrisis) 시대이다. 다중위기는 지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주요 식량과 에너지 위기, 세계교역 마찰 등이 전방위로 밀려오는 위기상황이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도 세계는 ‘다중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하면서 세계적 연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필자도 ‘코로나 19’ 바이러스 발생 시에 ‘복합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식량, 에너지, 기후변화, 수자원, 신종 바이러스 등 위기는 앞으로도 올 것이다. 다중위기 상황에 부닥친 우리는 비상한 각오로 특단의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가장 심각한 것이 식량위기이다.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수급 상황이 더 악화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경작지의 4분의 1이 파괴됐다. 당연히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주요 곡물 수출국이 수출통제나 제한조치를 취한다. 우크라이나(밀·귀리·설탕 등), 인도(밀), 인도네시아(야자유) 등 세계 35개국이 식품시장을 통제하고 있다. 밀, 옥수수, 콩을 넘어 “다음 차례는 쌀”이라고 한다. 쌀 시장은 여러 가지 특수성을 가지므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기후변화로 곡물 생산 기반은 더욱 나빠지고 시장 혼란과 겹쳐져 대형 재난이 우려된다.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식량시장에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극심한 기아를 우려한다.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는 “현재 곡물 부족 사태는 2011년 ‘아랍의 봄’과 2007~2008년 식량위기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한다. 전 세계 4900만 명이 기근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기아 인구가 지난해 2억7600만 명에서 올해는 3억2300만 명으로 늘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 곡물시장 불안으로 우리나라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우리는 2020년 곡물 수입량이 1717만 톤으로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곡물 수급 차질로 국내 사료가격이 상승하고 축산물 가격, 식품가격, 유가 등 타 부문을 압박한다. 인건비나 원자재 상승 등과 겹쳐 국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문재인 정부에서 누적된 물가상승 압력이 이제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하소연하나, 윤석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당면한 물가안정 대책에 총력 매진하는 동시에 곡물 시장 불안과 기후변화는 지속될 것이므로 더 근본적인 중장기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식량공급과 물가안정을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다중위기 시대이다. 한두 가지 정책과 몇 개 부처 노력으로 다중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 물가문제는 금리조정 등 통화정책만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 당분간 개혁보다 안정이 중요하다. 산적한 개혁과제 중에서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물가안정을 두어야 한다. 식량부족과 물가상승으로 체제위기를 가져온 많은 국내외 사례를 명심하자. 정부 물가정책도 지표 관리나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해외 곡물의 안정 도입망을 구축해야 한다. 해외식량 기지 확보, 곡물 자원개발과 물류망 구축, 선물 시장 참여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 때 실시한 해외곡물 조달 시스템을 보완해 대기업 참여, 품목 다변화를 시행해야 한다. 해외 곡물 시장 확보는 민족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다. 셋째, 물가에 대한 민간 역할을 증대하고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 1차적으로 정부가 물가안정을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나 민간 역할도 중요하다. 민간 수매확대 등 시장 기능이 반영되는 민간의 제도적 참여를 추진해야 한다. 민관 공동 대책반 운영, 대책 위원회 구성, 합동 점검과 분석이 필요하다. 물가도 결국 심리이다. 사재기 등 불필요한 구매심리를 자극하지 않고, 물가 불안을 틈탄 편법적 가격인상을 잘 모니터링해야 한다. 물가안정에 민관과 여야가 따로 없다. 물가는 경제주체 간에 공동으로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합심 노력하여 다중위기를 극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