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칸영화제에서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브로커’에는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자신의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버린 소영(이지은)에게 여성청소년과에서 근무하는 경찰 수진(배두나)은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왜 낳았어?”라고 묻는다. 그러자 소영은 “지웠어야 했다고?”라고 반문한다. 이에 수진은 “아이를 생각했다면”이라고 답하자 소영은 다시 묻는다.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낳기 전에 죽이는 게 죄가 더 가벼워?”라고.
이 장면에 대해 일부 평론가들은 고레에다 감독이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죄악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고레에다 감독은 3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칸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로부터 임신중단 권리에 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며 “임신중단은 분명히 여성의 권리”라고 밝혔다.
낙태 이슈에 대해 사회학자 오찬호는 최근 출간한 책 ‘민낯들’에서 한국은 여전히 성적 자기결정권이 낯선 사회라고 진단한다. 그는 “여성과 출산을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게 서툴렀던 오랜 문화적 관습은 낙태와 여성을 윤리의 영역에 묶어 낙태한 여성을 무책임하고 타락한 존재로 낙인찍는 관성을 자연스레 야기했다”고 꼬집는다.
이어 “임신과 출산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할 사람의 문제다. 자신의 신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즉 임신유지와 임신중지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한 인간의 생애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정부와 국회는 관련 법 개정을 논의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체입법안이 마련되지 않아 수많은 여성이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다수 전문가들은 현재는 의료 현장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임신중단을 희망하는 여성에게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한 후속 대책을 조속히 논의해야할 때라고 지적한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장은 “가장 시급한 건 임신중단과 관련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라며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여성의 임신중단을 돕는 공인된 제도적 장치가 없어서 수술은 여전히 음성적으로, 고비용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이어 “수술에 의한 임신중단뿐만 아니라 유산유도제와 같은 약물 복용 승인을 통해 여성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시술받을 수 있도록 선택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김 본부장은 “임신중지에 대한 의료인들의 교육이 더욱 체계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등을 통해 여성의 임신중지를 위한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