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K콘텐츠? 진짜 흥행 이유는 '해석의 여지'

입력 2022-04-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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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포스터 (애플tv+)
▲'파친코' 포스터 (애플tv+)
5회까지 공개된 애플tv+ ‘파친코’를 두고 ‘K콘텐츠의 활약’이라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지만, 글로벌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대중문화의 "국적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파친코’는 오히려 한국인, 미국인 그리고 그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디아스포라까지 “각자의 시점에서 해석하는 흥미로운 텍스트”에 가깝기에 주목받는다는 이야기다.

‘파친코’는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경험하는 선자(윤여정)의 강인한 생존기를 다룬다. 또 다른 주인공인 손자 솔로몬(진하)은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나고 이후 미국으로 대학 진학한다. 총 4대에 걸친 긴 호흡의 서사로 세대도, 경험도, 생활공간도 조금씩 다른 주인공들의 맥락을 섬세하게 반영했다.

▲'파친코' 스틸컷 (애플tv+)
▲'파친코' 스틸컷 (애플tv+)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일제강점기 흔적 곳곳에

‘파친코’는 일제의 부정적인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1910년대 초반 조선에서 시작한다. 부산 영도에 사는 젊은 선자(김민하)가 일본인에게 겁탈당할 뻔하고, 일본에서 지저분한 일로 큰 돈을 번 어업중개인 한수(이민호)가 그를 구해준다.

4화에서는 조선 쌀을 일본인 관리가 엄격히 관리하는 통에 마음대로 쌀을 사고팔지 못하는 장면이, 5화에서는 ‘일본군 위안부’를 암시하는 언급이 등장한다. 동고동락한 형님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뒤늦게 고향을 다시 찾은 선자는 어린 시절 한집에 살던 언니(김영옥)에게서 “만주 공장에 좋은 일거리가 있다고 우릴 소개시켜준다카대”라는 덤덤하지만 아픈 증언을 전해 듣는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외국인에게는 다소 낯선 ‘일제 식민시대의 아픔’을 상세히 다룬 ‘파친코’에 국내 시청자들의 호응도 커졌다. 유튜브에 1주일간 무료 공개됐던 ‘파친코’ 1편의 조회수는 1000만 회를 돌파했고, OTT 서비스 통합 순위를 제공하는 키노라이츠에서 2주 연속 1위에 올랐다.

▲'파친코' 스틸컷 (애플tv+)
▲'파친코' 스틸컷 (애플tv+)

미국서 선호하는 ‘이민자 적응기’… 라스베이거스 연상케하는 볼거리

‘파친코’는 한국 시청자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미국인 취향에 맞게 설계됐다. ‘파친코’ 테레사 강 로우 프로듀서는 1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아시아 이야기를 미국적인 아이디어로 들려주는 데 관심이 많다”고 했다.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이민자의 적응기’ 서사는 주효한 아이디어다. 종교가 없던 선자는 목사 남편 이삭(노상현)을 만나 기독교 신자로 변화한다. 미국아카데미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에서도 한국이민자 모니카(한예리)와 제이콥(스티븐 연)의 삶은 기독교와 뗄 수 없었다.

‘파친코’ 제작진과 ‘미나리’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은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들은 부모 세대가 기독교를 접점 삼아 미국 생활에 부단히 적응하는 과정을 지켜봐 왔기에, 자기 작품 안에서 ‘미국인에게 소구하는 지점’을 보다 명료하게 표출해내는 것으로 보인다.

배우들이 실제 파친코 공간을 배경으로 춤추는 화려하고 세련된 오프닝이 지극히 미국적인 볼거리라는 분석도 있다. 영화연구자인 이와테대학교 양인실 부교수는 “마치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관광산업처럼 묘사됐지만, 재일한인에게 파친코는 국가 규제가 심하고 일반의 인식도 좋지 않은 기피 산업이다. 어쩔 수 없이 그 돈으로 생존은 했지만 그것을 창피해 하는 이중적 감정을 느낀다”고 맥락의 차이를 짚었다.

▲'파친코' 스틸컷 (애플tv+)
▲'파친코' 스틸컷 (애플tv+)

K콘텐츠보단 디아스포라 서사에 가까워, 솔로몬을 보라

‘한국인이라고 설명하기 귀찮을 땐 그냥 일본인이라고 말한다’는 대사처럼,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진학한 선자의 손자 솔로몬은 어느 국가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않는 디아스포라에 가깝다.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 다큐멘터리 ‘헤로니모’를 연출한 전후석 감독은 “재미한인 이민진 작가가 몇 년간 일본에 살면서 재일한인의 존재와 역사를 알게 됐을 때 큰 충격과 설렘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미국에서만 자란 재미한인은 자기 정체성을 ‘코리안’이나 ‘코리안 아메리칸’ 정도로 생각하지만, 지역적으로 국한된 미국을 벗어난 다른 곳에도 한인이 살고있다는 걸 알면 자신을 (더 넓은 범주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일원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그 맥락에서 솔로몬은 극 중 가장 다층적인 캐릭터로 묘사될 것으로 보인다. 전 감독은 “모든 디아스포라는 고통에서 시작해 필연적으로 혁신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해 다른 문화를 흡수하고 무언가를 탄생시키기 때문"이라면서 "솔로몬에도 그 ‘혁신성’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양 부교수는 글로벌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대중문화에 대해 "국적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면서 ‘파친코’는 이미 “각자의 시점에서 해석하는 흥미로운 텍스트가 됐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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