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 간담회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저출산 대책은 실패했다”면서 “심각한 인구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저출산위원회가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이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 의무화다. 방과 후 학교를 공교육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저출산 대책은 지난 4년여 동안 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 의무화 정책이 제자리걸음이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통계청이 2019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맘이 퇴사를 결심한 근본 원인은 결혼(30.7%), 임신·출산(22.6%)보다 육아(38.2%) 문제다. 어린이집은 최대 오후 7시 30분(법정 하원시간)까지 맡길 수 있는 데 비해 초등학교는 1학년 때 오후 1시면 수업을 마쳐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한다. 학교 돌봄이 있지만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교육의 질이 만족스럽지 않다. 아이를 여러 학원으로 보내다 결국 경력을 단절하게 되는 워킹맘이 부지기수다.
현 정부 임기 동안 국내 출산율은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사상 최저 기록을 갈아치웠다. 유엔인구기금(UNPFA)의 ‘2020년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조사 대상 198개 국가 중 꼴찌다. 2006년부터 15년간 저출산에 200조 원을 투입했는데 말이다.
정부가 4년여 만에 방과후 학교 확대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은 결국 보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초등학교 돌봄’이라는 첫 단추부터 꿰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정부는 현재 연간 655시간인 우리나라 초등학교 정규 수업 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4시간을 크게 밑돈다며 이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맞벌이 학부모 등이 학교에 요청할 경우 기초 학력 보정이나 자유 놀이 활동, 방과 후 체육활동 등의 프로그램을 추가 편성해 현재 최대 6교시인 초등 수업 시간을 더 늘리는 방안도 제시했다.
예상대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교육계는 일제히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교총은 “서구 선진국처럼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시스템이 안착되도록 탄력근무제 활성화 등 근로 환경과 제도를 개선해야지, 출산율 제고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고작 초등 교육시간 연장이냐”고 주장한다. 교사노조연맹 역시 정규 수업에 집중해야 할 교사가 돌봄에 동원되는 것은 초등교육 질을 떨어뜨리는 무책임한 정책이라며 비판했다. 이들의 반발 요지는 “학교가 보육기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충분한 부처 간 협의 없이 대책부터 덜커덕 내놨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방과 후 돌봄 업무가 국가가 책임지는 공적 영역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있지 않다. 돌봄 주체가 학교인지 지자체인지 법적 근거도 불분명하다. 이런 와중에 ‘초등돌봄 전담사’가 소속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주장하고 있다. 돌봄전담사는 계약직인 데다, 아이 돌보는 시간만 근로로 인정되는 시간제 근무여서 급여 수준이 낮다. 이참에 초등돌봄 문제를 수면 위로 확실히 끌어올려 단순한 보육의 차원을 넘어 진화된 교육의 한 형태로 인정해야 저출산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는 "돌봄 서비스의 접근성 강화를 위해 공공이 나서야 하며 이는 운송 인프라가 경제를 강화하듯 우리 경제를 더 탄력적으로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출산장려정책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는 2020년 합계 출산율이 1.86명으로 우리의 2배를 훨씬 웃돈다. 프랑스가 출산 강국이 된 이유는 ‘아이는 여성이 낳지만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프랑스 초등학교는 수업시간 45분에 쉬는 시간이 30분이다. 하교 시간은 4시 30분이고, 이후는 필요시 아이를 더 맡겨둘 수 있다. 이렇게만 운영의 묘를 살려도 학교 돌봄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우리나라 저출산 정책 역시 책상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닌, 당사자들의 문제라는 공동체 의식이 절실하다. 기재부, 여가부, 복지부 등 출산정책 입안에 육아 당사자인 2030대 공무원들을 직접 투입해 발상의 전환을 통한 혁신적인 정책을 만들어보는 건 어떤가. h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