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제성장률(실질 국내총생산(GDP) 기준)이 2%대에 턱걸이했다. 잠재성장률(2.5~2.6%)을 밑도는 수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이후 최저치다. 반도체 부진 등에 따른 교역조건 악화로 국내총소득(GDI)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뒷걸음쳤다.
22일 한국은행은 지난해 실질 GDP가 전년보다 2.0%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2009년(0.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출항목별로는 정부소비 증가세가 전년 5.6%에서 6.5%로 확대된 반면, 민간소비는 2.8%에서 1.9%로, 수출은 3.5%에서 1.5%로 증가 폭이 둔화했다. 건설투자와 설비투자도 각각 3.3%, 8.2% 감소하며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성장기여도를 주체별로 보면 정부는 1.5%포인트(P)를 기록해 2009년 2.3%P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민간은 0.5%P에 그쳤다. 항목별로 내수는 1.2%P, 순수출은 0.9%P로 각각 2012년(0.6%P)과 2018년(-2.0%P)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민간소비와 투자가 개선 조짐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인 요인”이라면서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인구정책과 생산성 향상 등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을 보여주는 실질 GDI는 0.4% 감소했다. 이 같은 감소세는 1998년 7.0% 감소 이후 처음이다. 반도체 가격 하락에 따른 수출물가 하락이 유가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하락보다 컸던 탓이다.
민간 연구기관들이 지난해 성장률을 1%대로 예상했던 점을 고려하면, 2%대 성장률을 유지한 것 자체가 나름의 ‘선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4분기(10~12월) GDP가 전기보다 1.2%(전년 동기 2.2%) 늘면서 2017년 3분기(1.5%)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여도 측면에서 정부가 1.0%P를 기록해 성장률을 견인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 성장은 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켜냈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4분기에는 분기 기준으로는 2017년 3분기 이후 9분기 만에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며 “민간 부문의 경우 아직 만족할 수는 없지만, 2분기 연속 전기 대비 성장을 이어간 점도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강조했다.
다만 전년(2.7%)과 비교해 성장률이 큰 폭으로 둔화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소득주도 성장에 쏠린 경제정책으로 인해 성장률 둔화에 대응할 적기를 놓쳤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4분기만 보면 선방했지만, 연간으로 보면 기조적으로 성장의 힘이 뚜렷이 하락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제조업보단 서비스업, 수출보단 내수가 중요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 등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단기적인 대책으로 성장세를 반등시키기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가 재정을 활용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기존에 성장에 도움이 되는 정책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며 “주로 복지나 분배 쪽이었는데, 이로 인해 재정의 경기부양 효과가 제한적이지 않았나 싶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