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전 대법원장은 23일 오전 10시 24분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법부 71년 역사상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영장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취재진이 “전직 대법원장 최초로 구속영장 심사를 받게 됐는데 심경이 어떠시냐”, “어떻게 다투실거냐”고 질문했으나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피한 채 곧장 법정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취재진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잠시 응시하다 손으로 밀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포토라인 패싱’은 예견된 일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검찰소환 조사 당시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정작 검찰청에선 포토라인을 지나쳤다. 또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시점에는 변호인을 통해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포토라인에서 발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사전에 밝힌 바 있다.
이날 법원은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3층을 통제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은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예우없이 다른 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심사를 마친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할 것으로 관측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및 법관 인사 불이익 등 사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개입 및 지시한 혐의 등 40여 개의 혐의를 받는다. 제기된 혐의점이 방대해 검찰이 법원에 낸 구속영장청구서만 해도 260여 쪽에 달한다. 앞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은 혐의 40여 개, 구속영장청구서는 234쪽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받는 혐의가 방대하고, 이를 모두 다투고 있는 만큼 심리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임 전 차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결과가 다음 날 새벽 2시께 나온 점을 고려하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도 자정을 넘겨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사법농단 핵심 피의자로 꼽히는 박병대(62) 전 대법관도 이날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10시 19분께 법원에 출석했다. 양 전 대법원장보다 먼저 법원에 도착한 박 전 대법관도 빠른 걸음으로 포토라인을 지나쳤다. 박 전 대법관이 카메라에 비친 시간은 5초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