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청와대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비선 실세가 재벌을 만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확대해석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종석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은 청와대와 재계의 비공개 소통 채널이고,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은 반(半)공개 소통 채널이다”라고 떳떳하게 밝혔다.
청와대 실무진이 개별 기업을 만나 소통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대화 내용은 필요에 따라 당연히 비공개로 처리하는 것이 맞지만, 만남 자체까지 비공개로 할 필요가 있을까. 그동안 청와대는 “재계 총수와의 비공식 접촉은 문제가 많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여러 차례 보인 바 있다. 이런 점에서 굳이 만남 자체까지 비공개로 해 의혹을 키울 필요가 있을까.
조선시대조차 임금이 신하와 독대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던 이유를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관(史官) 제도를 둬 임금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빠짐없이 기록했는데, 사관 없이 임금의 독대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만일 임금이 특정 신하와 독대하려는 것이 알려지면 사관은 물론 신하들이 들고일어나 반대했다. 조선시대 임금의 독대를 반대했던 것은 불필요한 오해와 정쟁에 휩싸이는 것을 막고자 했기 때문이다. 특히 독대자가 임금의 총애를 받는 것을 빌미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전횡을 경계하고자 임금의 독대를 막았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독대 금지를 제도화한 성종 이후 임금의 독대에 관한 기록은 단 세 차례뿐이다. 선조와 영의정 유영경의 독대(1607년), 효종과 이조판서 송시열의 기해독대(1659년), 숙종과 좌의정 이이명의 정유독대(1717년)만 기록돼 있다. 유영경과 이이명의 독대는 훗날 정쟁의 씨앗이 돼 결국 사약을 받고 죽는다. 송시열도 독대 이후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현종, 숙종 때까지 두 임금을 모시지만 결국 세자 책봉 문제로 사약을 받는다.
이처럼 임금과의 독대가 좋은 결말로 이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정치는 숨길 것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최고의 권력자가 아무리 좋은 뜻으로 독대해도 독대 상대방이나 그를 견제하는 반대 세력이 그 내용을 곡해하게 되면 결국 권력 비리나 정쟁의 씨앗이 되는 사례를 너무도 많이 봐 왔다.
세간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임 실장의 재계 총수와의 비공개 만남은 청와대의 말대로 이전 정부의 비선 실세 만남과는 차원이 다른 만남이라는 데 동의한다. 재계와 소통하고자 비공개 만남을 했을 것이다. 최근 논란이 돼 무산된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8대 그룹 실무진과의 만남도 그런 뜻으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만남 자체를 비공개로 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세간의 의혹 제기는 청와대가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가뜩이나 재계에서는 청와대와의 비공개 만남을 적폐로 몰아붙이는 사회 분위기에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공식적인 소통창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8대 그룹의 만남 같은 기업 관계자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재계의 목소리가 있다. 개별 기업과의 만남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개별 기업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려면 비공개 개별 만남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최근 논란이 된 비공개 만남은 오히려 정쟁의 대상만 되고 있다. 만남 자체를 숨길 필요가 과연 있을까. 청와대는 비공개 만남이라 굳이 안 알렸을 뿐이라고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차라리 공식적인 소통창구를 마련해 내용은 비공개로 하되, 그 내용은 훗날 공개할 수 있도록 기록에 남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