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당 구도를 다당제라고 한다. 단순히 정당 수가 전보다 많아서 다당제일까. 영남과 호남 중심의 양대 정당이 두 축으로 워낙 견고하게 기득권을 유지해왔던 터라, 거대 정당이 깨지고 분파가 생겨 원내교섭단체를 이뤄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니까 다당제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살뜰하게 수용하는가의 관점에서 보면 다당제는 아직 우리 정치 풍토에 자리 잡은 것 같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새민중정당이 각각 120, 107, 40, 20, 6, 2석 순으로 의석수가 분산됨에 따라 양당제의 폐해가 다소 완화됐다. 집권여당으로서는 쟁점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타당과의 협치, 연대가 불가피해졌다. 서로 대화, 타협하며 교섭해야 할 파트너가 많아진 풍경 속에서 다양하고, 다층적인 국민의 이해와 권익,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되고 반영되고 있는지 체크해봐야 한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말이다. 요즘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는가. 방송에서 보는 정치인의 모습에서 성심, 진심을 느껴본 적 있는가. 그러고 보면 정치적 판단을 하는 뇌는 아마도 감성적 뇌가 아닐까 싶다. 저소득층이 부자나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 그 방증이 될 것이다. 마치, 명품을 들면 자신의 지위가 격상되는 듯 정서적 만족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정치인과 정당을 선택할 때, 내게 어떤 이익을 주는가를 보자. 어떤 자부심에서, 어떤 한풀이에서 지지 정당을 선택하고 사람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가치와 철학 그리고 국익을 기준으로 정당과 정치인을 선택해야 최선이지만, 최선이 어렵다면 감정과 정서에 의해 선택하는 최악은 피해야 한다. 보수진영의 리더십 부재의 위기가 현실 정치를 우려스럽게 바라보게 한다.
국민은 현명하지 않을 수 있지만 결코 틀리지 않는다고 한다. 정책적 관심을 끌기보단 감성과 정서를 자극하는 이미지나 스토리에 넘어가지 말자.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실천을 잘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 고민하는 수고로움이 더해져야 진정한 정치인이 드러나고, 신진들이 등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