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에 대해 한정 후견을 결정했다. 가족 간 재산분쟁 등을 우려해 국내 한 복지재단을 후견인으로 정했다. 그런데 청구인인 박 씨의 이모가 돌연 신청을 취하했다. 자신이 후견인이 되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아예 소를 취하해버린 것이다. 법원이 박 씨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성년후견제는 시행 4년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곳곳에 한계가 존재한다. 신청인이 중간에 청구를 취하할 수 있는 조항의 경우 악용될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후견인이 마음에 안들면 아예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 있는 탓이다. 법무부는 이를 막기 위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후견개시 청구를 취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가사소송법 전부 개정안’을 마련했다. 현재 개정안은 법무부가 심사 중이다.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이 후견 사건에 적용되지 않도록 명문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족상도례란 친족 사이의 사기ㆍ횡령ㆍ배임 등 범죄의 경우 형을 면제하거나 친고죄로 한다는 조항이다. 현재 후견인의 80% 이상이 친척인 점을 고려했을 때, 이들이 돈을 빼돌려도 처벌할 수 없는 조항인 셈이다.
성년후견인 형이 횡령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그 예다. 현재 제주지법에서 진행 중인 이 사건은 친족 후견인을 기소한 첫 사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관련 판례가 없으나 일본최고재판소는 ‘성년후견인이 피후견인 재산을 횡령할 경우 친족상도례를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판례로 피후견인의 권한을 보호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법원도 비슷한 취지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서도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한다. 이현곤 변호사는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이 후견인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특별법 등으로 개정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했다.
후견제도에 대한 검찰과 지방자치단체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행법상 배우자나 친척 외에 후견을 청구할 수 있는 자는 검찰과 지방자치단체장이다. 하지만 검찰이 서울가정법원에 성년후견을 청구한 건수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지자체 신청 건수 역시 전체 사건의 10% 내외다. 독거노인 등 후견이 필요한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못 받는실정이다.
법무부는 현재 교수와 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 팀을 꾸려 후견제도 활성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치매 노인 등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좀 더 제도를 활성화해 미래를 선도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