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헌재 결정 승복운동을 하자

입력 2017-02-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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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한국인들은 지금 광장에서 산다. 그 광장은 두 진영에 점거된 대립과 쟁투의 공간이다. 일찍이 소설가 최인훈이 말했듯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다.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라는 언급이 이어지지만, 중요한 건 광장이 대중의 밀실이라는 점이다. 둘로 나뉜 밀실에서 상대 진영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물 주어 기르는 콩나물처럼 커가고 있다.

두 진영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에서 “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시작된 촛불의 행진에는 ‘이석기 석방’과 같은 잡티나 불순물이 끼어들어 초점이 흐려지고 있다. 본질과 관계없는 온갖 요구를 촛불에 실어 외침에 따라 진지한 분노가 행락의 일상화로 묽어지는 양상이다.

촛불에 맞서 펼쳐진 태극기 행진에서는 세대 갈등의 요인이 먼저 읽힌다. 참여자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다.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 해온 일이 무시되고 부정되고 있다는 위기감과 울화가 기본 정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세월과 일의 상징이 박근혜 대통령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들은 “우리를 인정해달라”고 외치고 있는데 그 요구가 무질서 과격 욕설로 나타나는 게 문제다.

대결과 쟁투의 끝은 어디인가. 나는 탄핵이 인용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인용이든 기각이든 어떤 판결을 내리든 상황이 마무리될 것 같지 않다. 기각하면 혁명을 해야 한다거나 헌재에 책임을 묻는 ‘적폐 탄핵’ 절차를 시작하거나 퇴진 투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외치는 정치인들이 있다. 반대로 탄핵을 인용하면 반대 세력의 반발이 더 거세지고 세질 것이다. 시위와 대립이 폭력화할 수도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인들은 헌재 판결 이후의 상황을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기 대선이든 처음 예정됐던 대선이든 아니면 다른 요인으로 인한 그 중간치 대선이든 다음 국면으로 최대한 무리 없이 넘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이 13일 국회의장이 주재하는 형식으로 만나 탄핵심판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승복하기로 구두 합의를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회동에 빠진 정당이 있는 데다 참여한 정당 중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일단 이런 합의라도 한 것이 의미가 있다.

다음 차례는 대선 출마 희망자들의 입장 표명이다. 이것은 정당 차원의 승복 의사 표명과는 다른 문제다. ‘민의는 탄핵 인용인데 헌재가 설마 (또는 감히) 기각을 하랴’ 하는 생각에서 헌재를 압박하는 사람들은 촛불을 더 높이 추켜들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기각한다면 승복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지금 굳이 입장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없다고 코치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과 같은 논리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봐라, 대선에 출마할 거냐고 기자들이 집요하게 물어도 ‘지금은 국정에 전념할 때’라고만 하지 않는가. 대통령 될 사람이라면 이 정도 간교함은 지혜라 생각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황 대행도 문제이지만, 이렇게 말해도 욕먹고 저렇게 말해도 표가 떨어진다는 생각에서 애매한 태도와 답변을 취하는 사람은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자격 미달이다.

대선 출마 희망자들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탄핵을 둘러싼 쌍방 세력 내부와, 각종 사회단체에서도 이제는 판결 승복을 약속하는 운동이 펼쳐져야 한다. 헌재는 물론 만능이 아니다. 재판관들이 언제나 진선진미(盡善盡美)하고 절대무구(絶對無垢)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은 헌재가 최종 판단을 위임받은 헌법상의 기구이기 때문이다. 지금 쌍방은 “이게 민주주의냐?”고 외치며 삿대질을 하고 있지만, 제도와 규칙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게 바로 민주주의의 첫걸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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