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목상으로 출발했다. 반면 원주에 있던 선경직물을 싼값에 인수해 운 좋게 토대를 닦은 최 선대회장의 형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회장의 경우도 있다.
재계 1세대는 자재, 소비재 조달 무역을 위한 달러 축적 등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 확보에 생사를 걸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만큼 매 순간이 생사를 건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 명예회장은 쌀장사로 번...
아버지는 스무 살 때 진주시장에서 지금의 어느 기업 창업자와 포목장사를 하셨다.
그때의 이야기를 한 천 번은 들었다고 하면 과장일 것, 그러나 참 많이도 들었고 아버지는 참 많이도 그 기억을 행복하게 말하는 것을 즐기셨다. 자신의 상술(商術)이 얼마나 좋았는지 “그 사람, 그때 내 덕분에 부자(富者)의 길로 들어섰다”고 눈을 지그시 감으시면서 자기도취...
군 입대하기 전에 ‘장사’를 배워볼 생각으로 취직한 곳이 광장시장 포목점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늘 ‘광장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한다. 학벌에 대해서 그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사회는 학벌 순이 아님을 그는 잘 안다. 최근 ‘금수저’ 논란이 일고 있지만 자신만 부지런히 노력하고 희생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존 철학’이다.
물론 학벌로 인해...
스트라우스는 광부들을 상대로 장사하기로 마음먹고 포목 도매상을 열었지만 매출은 기대에 못 미쳤다. 파산 위기에 빠진 그의 눈에 들어온 게 광부들이 해진 옷을 깁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때 질긴 천막 천으로 옷을 만들었는데 그게 진, 즉 청바지의 탄생이다.
오늘날 청바지의 대명사가 된 ‘리바이스’가 글로벌 파워 브랜드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고 이 명예회장은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어렸을 때부터 장사에 뛰어난 수완을 보였다. 그는 1950년대 초 서울 종로에서 포목점을 하다 유리, 비누, 농약 등의 원료가 되는 화학원료 소다회에 주목했다. 1959년 소다회를 만들던 동양화학을 인수한다. 현 OCI의 전신이다.
동양화학은 1968년 인천에 소다회 공장을 세운다. 연간생산 능력이 당시 국내...
박승직 창업주는 15년 동안 보부상, 등짐장사 등 상인생활을 했다. 그러다 1896년 조선 후기의 서울 3대 시장(종루 앞 시전상가, 남대문 밖 칠패시장) 중 하나인 배오개시장(지금의 종로 4가)에 포목상 ‘박승직상점’을 열었다. 이후 박승직 창업주는 승승장구했다. 1906년에는 한국 최초의 경영인 단체인 한성상업회의소의 상임의원을 지냈다. 또 같은 해 정삼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