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후기부터 전승된 최고급 백주를 구현했다.
고객의 행운을 기원하는 수정방 레드 포춘은 붉은색과 황금색 디자인에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수정방 No.8은 양조장 보수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8호 효모의 균을 배양해 현재 기술로 세심하게 양조한 제품이다. 깔끔한 맛으로 편안하게 마실 수 있어 대표적인 수정방 입문 제품이다.
세 가지 제품 모두 알코올...
산문에 뛰어나 원나라 말기 사회의 여러 모순과 부조리를 풍자한 글을 많이 썼다. 저서로는 ‘성의백문집(誠意伯文集)’과 우언체 산문집 ‘욱리자(郁離子)’가 있다. 오늘은 그가 숨진 날. 1311~1375.
☆ 고사성어 / 호의불결(狐疑不決)
‘여우는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라는 뜻. 의심해 머뭇거리고 결행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우리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은 물리쳤지만 원나라의 침략은 물리치지 못했다. 나당연합군의 고구려와 백제 멸망, 임진왜란 때 명의 원군,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의 굴욕, 이 땅에서 일어난 청일전쟁, 상하이 임시정부가 충칭까지 쫓겨간 고난의 세월, 한국전쟁 때의 중공군 인해전술, 동북 3성에 살던 조선족의 한국 진출, 수만 명에 달하는 중국 유학생 수, 서울과...
만주벌판을 누리던 고구려가 아니라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삼국통일을 했을 때, 고려가 몽골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종속되었을 때,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고 조선을 건립하였을 때 심화되었을까.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패배와 무기력이 학습된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나라의 30만 대군과 당태종이 이끌고 온 100만 대군을 물리쳤던 고구려, 나당전쟁에서...
과거 원나라부터 무굴 제국, 영국, 소련까지 당대를 호령한 세계 초강대국이 아프간에서만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국토의 절반이 해발 1000m 이상인 산악국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곳곳에 있는 토착 세력의 거센 저항 등 때문이었다.
탈레반은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로 인정받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여성들의 교육 권리를 보장하고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는 고려 충선왕이 1309년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을 가져오기 전까지 당나라의 선명력(宣明曆)을 사용해 동지를 설로 지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부터 동짓날이 되면 백성들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다. 이웃 간의 어려운 일은 서로 마음을 열고 해결했는데, 오늘날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를 펼치는 것도 동짓날의 전통이 이어...
중국에서는 13세기 원나라 때 비단과 황금 실로 짠 스카프가 오늘날 마스크와 유사한 최초의 아이템이었다. 이탈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 따르면 신하들은 황제가 식사하는 동안 입과 코를 스카프로 가렸다. 그들의 입김이 황제가 음식의 냄새와 맛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마스크의 출현 계기였다....
너무나 궁핍했던 어린 시절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까지 중국, 아니 세계를 주름잡았던 대부호 심만삼(沈萬三)의 본래 이름은 심부(沈富)이다. 그는 원나라 말엽인 1328년 절강성 오흥(吳興) 지방, 지금의 후저우(湖州)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고장에서 뜻하지 않은 수재(水災)가 발생하여 전염병이 창궐하였고, 이로...
유명한 정화의 원정도 송나라, 원나라 시기 개방적으로 세계 곳곳의 기술을 받아들이던 것과 반대다. 국가가 화약기술의 기밀유지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제대로 된 기술 혁신이 일어날 수도 없었다. 유럽 국가들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던 반면 명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동·서양의 격차는 이때 결정적으로 벌어졌다.
기원, 원나라 제주 유입설 과학적 근거 제시
23일(목)
△환경부 장관 14:30 그린뉴딜 현장방문(서산 SK이노베이션)
△환경부 차관 10:30 차관회의(세종)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개발, 공급으로 미래차 대중화시대 조기 개막
△환경부, 실습위주 교육으로 물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한다
24일(금)
△환경부 장관 09:00 UN사무차장 화상회의(서울), 14:00...
그러나 세종은 능력우선주의로 원나라 기술자를 아비로 둔 관노 장영실을 면천하고 국익에 유익한 발명품을 만들어내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는다. 세종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백성을 위해서라면, 조선을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어떤 출신이라도 인재를 불러들여 쓰임을 다하게 만드는 실질 숭상의 군주였다. 이는 백성을 긍휼히 여겨 훈민정음 창제로까지 이어졌다....
중국 원나라의 유명한 극작가인 왕시푸(王實甫)의 작품 ‘여춘당(麗春堂)’에 나온다. 원문은 “적을 공격할 때에는 적이 미처 손쓸 틈이 없이 재빠르게 공격해야 하고, 일단 공격을 시작하면 쉬지 않고(말발굽을 멈추지 않고) 적을 사지로 몰아야 한다[的他急難措手 打的他馬不停蹄].”
☆ 시사상식 / 통화유통속도
일정 기간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에 사용되는...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는 한족이 세웠지만 금나라는 신라인이 여진족의 지도자가 되어 세운 나라이고, 원나라는 몽고족이, 청나라는 다시 여진족에 세운 나라이다. 그런데 현재의 중국은 한족이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오늘날의 중국 사회에서는 이민족이었던 만주족의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중국의 전통의상으로 여길 게 아니라, 한족이 세운 왕조인 송나라...
한편 원나라 때 시작된 채식기법은 계속 발전하여 명나라 선덕(宣德) 연간(1425∼1435)에 청화의 발색과 문양이 뛰어난 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된다. 그런 흐름은 바로 조선에 전해져 한반도에서 중국 못지않는 양질의 청화백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15세기 중후반이니 약간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
조선의 청화백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명나라 청화백자와는 미감의 결을...
☆ 고사성어 / 득원실신(得原失信)
진 문공(晉文公)이 원(原)을 공격하며 10일 내에 이기지 못하면 철수하기로 했다. 열흘이 되어도 원나라가 항복하지 않자 철군을 명령했다. 참모들이 좀 더 기다리자고 요청하자, “신용은 나라를 유지하는 보배이며 그것으로 백성을 지킬 수 있다. 원나라를 얻고 신용을 잃으면 어떻게 백성을 지키겠는가. 잃는 것이 더 많을...
이 호두나무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9월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의 어린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 집 뜰 안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 자리하고 있는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가 그때 심은 것인지의...
이렇게 훈련시킨 우리나라의 매는 충성스럽고 용맹하기로 이름이 나서 몽고가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받을 때에는 원나라로부터 매를 공물(貢物)로 바치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북미 정상회담을 우리는 凝視도 하고 또 鷹視도 해야 한다. 회담의 결과만을 보려 하지 말고 회담의 전 과정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북한과...
이 그림은 원나라의 황공망(黃公望 1269∼1354)이 그린 중국의 10대 명화로 꼽히는 작품. 그의 나이 72살 때 무용사(無用師) 스님을 위해 그리기 시작해 4년 만에 완성한 것으로, 절강성(浙江省)의 부춘강과 부춘산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린 수묵산수화다.
명나라 말,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오홍유(吳洪裕)는 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임종하면서 그림을 태워 그...
1279년 소제가 바다에 몸을 던지면서 송의 역사는 막을 내렸고 원나라 시대가 열렸다.
입술이 없어져 이가 시리기 시작한 고려는 송이 걸었던 민족주의를 답습하는 패착을 두고 만다. 최씨 무신정권은 ‘단일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대몽골 저항의식 고취에 나섰다. 단군 할아버지가 처음 등장하고 고구려의 영웅서사시가 인기를 얻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
선비족이 세운 북위(北魏)제국이 그렇고, 당항족(黨項族)이 세운 서하(西夏)제국, 거란족의 요나라, 몽골족의 원나라, 여진족의 금나라와 청나라가 다 황제를 자칭했다. 이처럼 중국 주변의 이민족들도 다 한 번쯤은 스스로 일어나서 황제를 칭하는 제국을 세웠는데 그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이 중국을 주인으로 섬기기만 해온 우리 역사의 사대성(事大性)을 임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