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대대로 벼슬을 한 명문가의 후손으로 후에 재상까지 지낸 허경종(許敬宗)이란 학자는 건망증이 심해 사람을 여러 번 만나도 그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한 친구가 “학문은 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혹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오?”라고 꼬집었다. 허경종의 대답이다. “그대들과 같은 사람들의 얼굴이야 기억하기...
당나라 때 최고의 예술론으로 서론(書論)이 발전했다. 성당(盛唐)시기에 활동한 서예가 장회관(張懷瓘), 그의 초서는 수백 년 동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는 서예를 ‘소리 없는 음악(無聲之音)’이며 ‘형태 없는 형상(無形之相)’이라고 했다.
이는 형이상학적 정신성이 짙게 배어 있는 서예의 미학적 특징을 잘 말해준다.
바로 종이 위에 표현되는 점획의 고저장단...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라는 시에 나온다. 왕십이(王十二)가 이백에게 보낸 ‘한야독작유회(寒夜獨酌有懷 : 추운 밤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 회포를 읊다)’라는 시에 이백의 답 시다. “세상 사람들 이것을 듣고 모두 머리를 내저어/마치 봄바람이 말 귀를 스쳐 가는 것 같으리[有如東風射馬耳].” 이백은 사람들이...
우리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은 물리쳤지만 원나라의 침략은 물리치지 못했다. 나당연합군의 고구려와 백제 멸망, 임진왜란 때 명의 원군,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의 굴욕, 이 땅에서 일어난 청일전쟁, 상하이 임시정부가 충칭까지 쫓겨간 고난의 세월, 한국전쟁 때의 중공군 인해전술, 동북 3성에 살던 조선족의 한국 진출, 수만 명에 달하는 중국 유학생 수, 서울과...
당나라 학자 단성식(段成式)의 수필집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나온다. ‘낭(狼)’은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은 이리, ‘패(狽)’는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긴 이리다. 낭은 패가 없으면 서지 못하고, 패는 낭이 없으면 걷지 못하므로 늘 함께 다녀야 한다. 이리의 앞다리와 뒷다리의 길이는 많이 차이나지 않고, 패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다. 동물인 낭과...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최치원 선생이 큰 뜻을 펴려는 의지를 담은 한시 '제가야산독서당'에서 가야산과 홍류동 계곡의 세속과 먼 자연의 웅장함을 엿볼 수 있다.
해인사는 불보종찰 통도사, 승보종찰 송광사와 더불어 법보종찰로서 우리나라 삼보종찰의 한 곳이다.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 국보 제5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장경판전을 비롯한...
당나라 때 서역의 고승 승가(僧伽)가 여행할 때다.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본 사람이 “당신의 성이 무엇인가(何姓)?”라고 묻자, 승가가 “성은 하씨다(姓何)”라고 했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何國人)”라고 다시 묻기에 “하국 사람이다(何國人)”라고 했다. 승가가 죽은 뒤 당나라의 서도가 이옹(李邕)이 그가 장난삼아 한 대답인 줄 모르고, 그의 비문에 ‘대사의 성은...
호응린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등고(登高)’를 “1편 속에 구(句)마다 율(律)을 이루고, 구 가운데 자(字)마다 율을 이루어 실로 하나의 뜻으로 관철하고 일기가성하였다[一篇之中句句皆律 一句之中字字皆律 而實一意貫串 一氣呵成]”라고 평하면서 이 시를 고금의 7언율시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송했다.
☆ 시사상식 / 디토소비
디토(Ditto)는 ‘나도’...
당나라 명신 위징(魏徵)이 당 태종에게 열 가지 반드시 명심해야 할 내용을 간언하는 상소에 “처음에 시작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능히 끝을 잘 마치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라며 “나태하고 게을러질까 두려울 때는 반드시 일의 시작을 신중히 하고 일의 끝을 잘 삼가야 한다[愼始而敬終]는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무제(無題) 시에 나온다. “어젯밤 별 반짝이고 바람 불 적에, 아름다운 누각 서쪽 향기로운 당 동편에 있었네. 몸에는 채색 봉황의 두 날개 없지만, 마음엔 신령한 한 점으로 통하는 무소의 뿔 있네[心有靈犀一點通]. 한 자리 건너 송구(送鉤) 놀이하며 봄 술 즐기고, 조를 나누어 사복(射覆) 놀이하니 등잔불이 붉었네. 아 북소리 듣고...
당나라 때 두 차례에 걸쳐 촉(蜀)을 진압하고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와 성도부윤(成都府尹)을 지낸 인물인 엄무(嚴武)의 시 ‘수별두이(酬別杜二)’의 시구에서 유래했다. “바람, 서리에 굳센 송백의 절개를 본받지 못하고, 임금님 은혜 나에게 내리심을 한갓 부끄러워하노라[未效風霜勁 空慙雨露私].” 촉 땅에 여러 해 있으면서 법령을 엄격하게 시행해 위세가...
당시 우린 고구려를 침공한 당나라에 맞서 함께 싸우는 등 오랜 기간을 함께 한 역사를 갖고 있다”며 “많은 한국인이 이런 사실을 모르지만, 이 부분을 더 조명하고 상호 관계를 재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현재 진행 중인 집단학살이 미치는 윤리·도덕적 영향을 고려해줄 것을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요청한다”며...
둘은 당나라 태종 때 ‘정관의 치’를 이루는 데 공을 세운 명재상들. 원전은 당서(唐書). 둘은 장점이 달라 두여회는 결론을 내리는 데 과감했고, 방현령은 계획을 세우는 데 뛰어났다[如晦長于斷 而玄齡善謀]. 방현령은 세밀한 분석과 구체적 해결책까지 제시했지만 결단력이 부족했다. 태종이 두여회에게 의견을 구하면 방현령과 의논해 그의 분석과 해결책이 옳다고...
중국 최초의 여황제가 된 측천무후(則天武后)는 당나라 태종의 후궁이었다가 고종의 황후가 되었다. 고종이 죽고 중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무후가 섭정했다. 중종이 친정(親政)할 나이가 되어도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자 소안환(蘇安桓)이 상소했다. “아직은 섭정의 자리에 계시지만,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그릇도 가득 차면 넘친다[物極必反...
재상까지 지낸 당나라 학자 허경종(許敬宗)은 건망증이 심해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한 친구가 그의 건망증을 꼬집으며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냐고 묻자 그가 한 대답에서 유래했다. “그대들과 같은 사람들의 얼굴이야 기억하기 어렵지만, 하손(何遜)·유효작(劉孝綽)·심약(沈約) 같은 문단의 대가들을 만난다면 어둠 속에서라도 더듬어 찾아 기억할 수 있소...
‘못에 드리운 한가로운 구름 여유로운데, 만물은 변화하고 별은 옮겨가니 몇 해나 흘렀는지[閒雲潭影日悠悠 物換星移幾度秋].’ 왕발은 양형(楊炯), 노조린(盧照隣), 낙빈왕(駱賓王)과 함께 초당사걸(初唐四傑)로 불린 당나라의 손꼽히는 시인이다. 왕발이 교지(交趾)라는 곳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홍주도독(洪州都督)으로 있는 염백서(閻伯嶼)가 등왕각 중수...
나귀를 타고 가던 당나라 시인 가도가 시상이 떠올라 첫째와 둘째 구절까지를 지었다. ‘새는 못 가 나무에 자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들긴다[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중이 달 아래 문을 두들긴다’라는 말보다는 ‘민다’라고 하는 것이 어떨까 고민하고 생각에 잠겼던 가도는 경조윤(京兆尹) 한유(韓愈)의 행차를 침범한 혐의로 그에게 끌려나갔다. 길을 막은...
선종 제6조 선승인 당나라의 혜능 육조대사(六祖大師)가 신주(新州)로 돌아가려 한다고 하자 만류하는 제자들에게 한 말.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시고 열반을 보이신 것은 옴이 있으면 반드시 감이 있는 것이니 이것이 당연한 이치다. 내 이 육신도 반드시 돌아갈 곳이 있다.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 오는 때는 말로 할 수 없다[葉落歸根 來時無口].”...
‘검토사’의 일본어 발음은 옛날에 일본이 당나라에 보낸 ‘견당사’의 발음과 같은 ‘겐토시’이므로 일본인들이 기시다 총리를 재미 삼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결정한 내용도 계속 바꿔나가는 기시다 총리에 대한 야유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적자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시다 정권은 경제대책에 큰 예산을...
☆ 고사성어 / 안중지정(眼中之釘)
권력자에게는 아첨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쥐어짠 탐관오리 조재례(趙在禮)는 당나라가 망한 뒤에도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의 세 왕조에 걸쳐 절도사 자리를 차지할 만큼 세금 걷는 수완이 좋았다. 그가 송주(宋州)에서 백성들을 착취하다 떠나자 “‘눈에 박힌 못(眼中之釘)’이 빠진 것 같구나”라며 모두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