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의 음악은 밴드 '쿠루리'가 담당했다. 쿠루리는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통해 이미 한번 소개했던 밴드다. 사실상 '조제'는 쿠루리의 영화음악 필모그래피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데뷔작이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그렇듯 '조제'에서 쿠루리의 영화음악 역시 고양이처럼 조심스럽다. 에둘러 슬픔을 유도하지 않으며, 억지로 영화에 음악 세례를 퍼붓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조제'의 음악은 무심하다. 그저 밀려오는 감정보다 한발 늦게 사뿐사뿐 걸어 나올 뿐이다. 실제 영화 '조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주 더디게 음악이 흘러나오던 츠네오의 오열 장면이었다.
'조제'에서 처음 귀에 들어오는 음악은 츠네오 역의 츠마부키 사토시가 조제 역의 이케와키 치즈루의 유모차를 끌고 달릴 때 흘러나오는 '乳母車(유모차)'다. 연한 파스텔톤의 사진과 달리는 유모차를 쫓는 팔로우 샷을 넘나드는 음악 '乳母車(유모차)'는 어두운 바닷속의 조제를 단번에 구름 위로 끌어올릴 만큼 가볍다. 이런 식의 쿠루리표 영화음악은 언제 들어도 심플하고 세련된 순백색이다.
그런가 하면, '조제'의 눈물 뒤로 흘러나오는 '恒夫とジョゼ(츠네오와 조제)' 속 피아노는 한없이 무겁다. 물속에 잠겨 눌리지 않는 건반을 억지로 꾹꾹 누르는 듯하다. 멜로디 역시 고작 건반 몇 개가 뚱땅거리는 단순한 라인이지만, 여기에도 쿠루리의 쓸쓸한 감성은 그대로 묻어나 있다. 오히려 덤덤한 음악 '恒夫とジョゼ(츠네오와 조제)'는 관객으로 하여금 납득하기 힘든 결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쿠루리의 영화음악은 신기하다. 영화를 볼 당시에는 이 장면에 이런 음악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모던락을 베이스로 하는 쿠루리의 음악이 잘 빠진 한 마리의 고등어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다시 한 번 음악을 접하면 당시의 영화의 장면과 분위기, 독특한 색감과 주인공의 목소리, 잊었던 대사들, 풍경과 소품들이 흐린 사진을 보듯 하나씩 떠오른다. 영화 '조제'를 감명 깊게 본 관객이라면 '조제' OST를 한 번쯤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마중 나온 쿠루리의 음악이 유연하게 찰랑거리며 잊고 있던 영화의 풋풋한 감성 속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단, 감정이입은 금물이다. 쓸쓸한 가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