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130억개를 넘는 종이컵이 사용되고 이 중 대부분 재활용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종이컵 천국’ 대한민국의 단면이다. 오래전부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개선 추세는 좀처럼 관찰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커피문화의 확산으로 일회용 컵 사용이 크게 늘면서 자원낭비와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나무 5500만 그루 죽인 셈 = 프랑스 전력청의 2008년 자료를 보면 나무에서 종이를 추출·가공하고 생산해 산적한 것을 전부 포함하면 종이 컵홀더를 포함한 450g 종이컵 한 개당 자연서식지 0.9㎡가 사라지게 된다. 전력청에 따르면 미국은 연간 160억개의 종이컵을 사용하는데 이를 위해 6500만 그루의 나무가 벌목되고 1만5000리터의 물이 정화에 사용되며 11만4758톤의 쓰레기가 발생한다.
한국의 종이컵 소비량은 어떨까. 자원순환사회연대의 연구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일회용 종이컵 연간 사용량은 7만215톤으로 약 135억개에 달한다. 인구가 우리의 6배에 달하고 일회용품 소비에 대한 아무런 규제가 없는 미국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다. 프랑스 전력청의 계산 방식에 대입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종이컵을 쓰고자 5384만 그루의 나무가 벌목되고 정화를 위해 1만2656리터의 물이 사용된다. 여기에 9만7369톤의 쓰레기는 덤이다.
자연히 환경오염도 뒤따른다. 일회용 종이컵은 나무를 베고 옮긴 다음 ‘펄프→종이→컵’으로 이어지는 공정을 거치고 제품을 배달하고 사용하고 나서 태우거나 묻는 과정을 거친다. 각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화학약품이 사용되기도 한다. 나무펄프 종이컵 물품 한 개의 전 생애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11g가량으로 알려졌다. 역산하면 국내에서만 한해 14만8500톤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종이컵을 통해 배출되는 것이다. 어지간한 규모 이상의 중견 제조업체 한 곳에서 배출하는 탄소배출량과 맞먹는 규모다.
◇규제완화·커피전문점 확산… 규제완화 이후 사용량 급증 =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의 일회용 종이컵 사용량이 줄어들기는커녕 최근 몇년 동안 가파르게 느는 추세라는 데 있다. 2008년 관련 규제가 폐지되는 동시에 커피전문점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등 관련 여건 변화가 원인이다.
2008년만 해도 관련법 시행규칙에 따라 음식점, 학교, 병원, 기숙사 등에서는 원칙적으로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일회용 종이컵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같은 해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폐지됐다.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한 일회용컵을 가져오는 손님에게 보증금 50~100원을 돌려주던 제도다. 이들 제도가 없어지면서 현재 우리나라에는 일회용 종이컵 관련 규제가 없는 상황이다.
규제완화와 함께 일회용컵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환경부와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맺은 업체의 매장당 하루 평균 일회용 컵 사용량은 2003~07년 평균 2만~3만개 수준에서 2009~12년에는 10만7811개로 껑충 뛰었다. 연도별로 봐도 2007년에는 3만1102개에 불과했지만 2010년 9만5402개, 2011년 11만5919개, 2012년 11만3925개로 불과 5년 새 4배가량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곳곳에서 일회용컵 사용을 감축하기 위한 제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는 “일회용컵 사용실태 관련 연구용역을 지난 5월에 시작했다”며 “11월경 결과가 나오면 충분한 검토를 거쳐 관련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지난 1월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촉법 개정안이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돼 논의되고 있다. 최 의원은 “보증금제처럼 강한 유인이 있어야 재활용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