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4일 오전 9시 6분. 도쿄증권거래소. 개장 종이 울린 지 6분이나 지났지만 수십 개의 대형주에서 어떠한 거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일본 3위 이동통신업체 소프트뱅크 주가가 5% 넘게 떨어졌지만 여전히 매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주당 6714엔에 30만주라는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총 20억 엔에 이르는 규모다. 거대 매수자의 등장에 다른 투자자들이 이를 따르면서 매수 모멘텀이 형성됐다. 이날 소프트뱅크는 닛케이225지수 종목 가운데 오른 2개 기업 중 한 곳이 됐다.
당시 소프트뱅크 주가를 끌어올린 사람이 일본증시에서 ‘CIS’라는 가명으로만 불리는 35세 개인 투자자라고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초단타 매매인 데이트레이딩 전문인 CIS는 아침 파자마 차림에 만화책으로 어지럽혀진 자신의 침실에서 불과 몇 번의 클릭으로 통신 대기업 소프트뱅크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의 클릭은 반등할 것 같다는 막연한‘촉’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CIS는 소프트뱅크의 시가총액이 지난 9일간 25%가 증발하고 간밤 미국 뉴욕증시가 하락한 것을 보고 회사 주가가 더 내려갈 것을 간파해 저가 매수를 시도한 것이다. 그는 지난 2월 매수에 나선 지 90분 만에 무려 1억4060만 엔을 거머쥐게 됐다.
그가 10여년 간의 데이트레이딩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160억 엔에 달하며 지난해에만 60억 엔(약 574억원)을 벌었다. 그를 비롯해 일본 초단타매매 투자자들이 지난해 아베노믹스 영향으로 호황을 누렸다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한 투자 성과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이미 일본 금융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통하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CIS로 불리는 이 남자는 자신의 얼굴은 물론 본명이 노출되는 것도 극도로 꺼려했다. 그는 “자신이 이뤄논 성과를 알리기 위한 인터뷰는 괜찮지만 3명 자녀의 신변이 우려돼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고 말했다.
그도 처음부터 ‘투자의 신’은 아니었다. 대학시절 기계 공학을 전공한 그는 온라인 게임 울티마 온라인에 빠져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일본어로 ‘죽음’을 뜻하는 가명도 자신의 게임 아이디(ID)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게임은 빨리 생각하고 차분해지는 법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용 충격흡수 장치 디자이너로 일하던 20대 초반 주식에 발을 들여놨다. 초반에 손해도 많이 봤지만 그 경험이 곧 자산이 됐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펀더멘털을 잊어라”고 조언한다. 금융관련 서적이나 신문을 구독하지 않고 회사의 실적보고서나 일본은행(BOJ)의 금융정책 발표문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대화방의 메시지에 귀를 열고 매수-매도 스크린에서 300개의 가장 많이 거래되는 종목을 유심히 관찰할 뿐이다.
그는 “사람들이 사는 주식을 사고 팔리는 주식을 판다”고 조언했다. 이는 나름의 심오한 원리가 있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주식이나 도박을 할 때 사람들은 흔히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에 빠지기 쉬운데 이를 CIS는 피했다는 것이다. 도박사의 오류는 사람들이 한번 돈을 따기 시작하면 판에서 나오지 못하고 반대로 잃어도 역시 돈을 딸 때가 됐다며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