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달러ㆍ엔 환율이 110엔대 돌파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달러ㆍ엔 환율은 지난 19일(현지시간) 109.46엔으로 지난 2008년 8월 이후 6년여 만에 109엔 선을 넘어섰으며 25일 현재 108엔대 후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엔화 가치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지난 1개월간 4.5% 하락했다. 블룸버그통신 집계에서 이는 16개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가파른 하락세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자 기사에서 달러화당 엔화 가치가 110엔은 물론 112엔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110엔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쇼크 이전 달러ㆍ엔 환율이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심리적 장벽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술적 분석가들은 지난 2007년 124엔대의 엔저에서 2011년 75엔대까지 달러ㆍ엔 환율이 76.4% 하락했다며 이런 하락폭을 감안하면 환율이 110엔은 물론 112엔대로 오를(엔화 가치 하락)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긴축, 일본은행(BOJ)은 경기부양으로 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조가 엇갈리면서 엔저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연준은 10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3차 양적완화를 종료할 예정이다. 이달 공개된 경제전망에 따르면 연준 정책위원들은 오는 2015년 말 기준금리가 1.375%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6월 전망치에서 0.25%포인트 상향 조정된 수치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도 내년 금리 인상 등 연준의 긴축행보가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BOJ는 내년으로 예정된 소비세 추가 인상을 앞두고 추가 경기부양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일본의 지난 7월 신선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3.3%로 14개월째 상승세를 지속했다. 그러나 4월 소비세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 효과 2%포인트를 제하면 실질적인 상승률은 1.3%로 BOJ 인플레이션 목표 2%에 못 미친다.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율 마이너스(-) 7.1%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휩싸인 2009년 1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경제지표도 부진한 모습이다.
이에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돈을 더 풀겠다고 시사하고 엔저를 용인하는 등 경기부양적 행보를 걷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 1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공식회동에서 “2%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지면 추가 완화 등 필요한 조치를 주저없이 실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호주 케언스에서 최근 막을 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현재 환율 움직임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경제 펀더멘털에 따라 환율이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엔저를 옹호했다.
가파른 엔저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03~2008년 BOJ 부총재를 역임한 이와타 가즈마사 일본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엔저가 다소 과도하다”며 “아베노믹스는 ‘자기궁핍화(beggar thyself)’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이미 그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경기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엔저가 ‘인근궁핍화(beggarthy neighbor)’는 물론 자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수입물가 상승 등으로 지난달까지 2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