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에 오른 김 전 회장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인사말을 적은 종이를 꺼낸 뒤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인삿말을 하던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울먹였다. 현장에 있던 대우그룹 전 임직원 중에서도 눈가를 훔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3월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 창립행사에 참석했을 당시 분위기는 차분했었다. 1년 반 사이 대우인의 분위기가 이처럼 반전을 보인 것은 수장인 김 전 회장이 “15년 전 대우그룹 해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적극적인 쟁점화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15년 전 가슴 아픈 일이 있었고 억울함, 비통함, 분노가 있었다”며 “시간이 충분히 지났기 때문에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우리는 역사가 주는 교훈을 통해 과거보다 나아진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며 “과거에 잘못된 실수가 미래에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신장섭 국립싱가포르대 교수가 그와 대화를 통해 만든 저서에서 대우그룹의 ‘기획해체론’을 주장했다. 신 교수는 대우포럼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우그룹 해체의 핵심 쟁점인 △부채비율 200% 규제 △제너럴모터스(GM)의 대우차 비밀 인수의향서 △대우와 삼성의 자동차 빅딜 종용 배경 △대우그룹의 단기차입금 19조원 증가 원인 등에 대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강봉균 전 장관이 해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과정이 모두 석연치 않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 그는 되레 “DJ정부가 구조조정론을 강조했던 것이 한국경제에 바람직한 일이었냐”고 물으며 “한국경제의 장기 저성장은 DJ정부가 원인”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처럼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 해체를 둘러싼 진실공방에 나선 것은 ‘김우중 추징법’과 관련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 전 회장은 현재 2002년 법원이 선고한 개인 추징금 17조9000억원을 내지 않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월 제3자 명의 차명재산을 추징할 수 있는 일명 ‘김우중법’(범죄수익 은닌 규제 처벌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김 전 회장의 아들 선용씨가 대주주인 아도니스골프장과 옥포공영, 베트남 소재 골프장 등의 조사가 가능해진다.
신 교수는 “김 전 회장에 대한 추징금은 원천무효”라며 “횡령 증거가 없었지만 법원이 징벌적으로 추징금을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 전 회장은 26일 대우포럼에 참석한 것 이외에는 국내에 머물 동안 다른 일정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추석 때까지 국내에 머물다 이후 베트남 하노이로 출국할 예정이다.
대우그룹 전직 고위 임원은 “김우중 전 회장이 인재양성 사업을 위해 앞으로 한국을 찾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그의 향후 행보를 귀뜸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