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에 정호승이 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라는 시가 있다. 세월이 흐른 다음 시인은 스스로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런 바람을 가졌던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정호승은 원고가 잘 써지지 않았던 때를 떠올린다. 노트북이 너무 구형이라서 자판을 칠 때마다 손가락 끝에 전달되는 느낌이 갈수록 둔탁해지는 것을 답답하게 여긴다. 노트북을 바꾸면 원고가 잘 써질 것으로 판단해서 산뜻한 노트북을 구입했다. 저자는 이 일에서 외양을 바꾸는 일은 어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문제는 본질에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이 구식이든 신식이든, 환경이 우호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문제는 자신의 원고쓰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많은 것들이 좌우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현재의 삶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내가 본질의 변화가 아니라 현상의 변화만을 바라고 있지 않는가 물어봐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해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쌀에 아무리 돌이 많아도 쌀보다 더 많지 않다’는 글에서 저자는 우리가 살면서 자주 느끼는 경험에 대해 말한다. 살다 보면 내 인생이라는 쌀에 고통이라는 돌이 더 많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이럴 때 위안을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부러 집을 나서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러 가면 된다. 시장도 좋고 병원도 좋다. 화장장을 가보면 내 삶의 고통이란 것이 정말로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시인의 독백은 이렇다. “고통은 인간적인 것이다. 고통이 없으면 누구나 인간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2007년 말기암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면서 ‘마지막 강연’이라는 동영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랜디 포시 교수가 있다. 인생에 대한 그의 관점은 우리들에게 위안과 용기와 지혜를 주기에 충분하다. “벽이 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가르쳐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서라는 뜻으로 벽이 있는 것이다.” 포시 교수의 이야기를 전하는 저자는 “벽을 벽으로만 보면 문은 보이지 않는다. 가능한 일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결국 벽이 보이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보면 결국 문이 보인다”는 설명을 더한다.
흔히 우리는 인생을 마라톤 경주에 비유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는 다르다. 인생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어가면서 음미하는 여행에 비유한다. “산책자나 여행자는 뛰어가거나 달려가지 않는다. 그냥 걷는다. 그것도 자기 자신의 걸음걸이로 천천히 걷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자기 자신의 걸음걸이로’일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저자와 같은 독백이 나오기 쉽다. “나는 이제 인생이라는 길을 달리고 싶지 않다. 그냥 걷고 싶다. 그것도 좀 느릿느릿 여유 있게 걷고 싶다.”
성철스님을 떠올릴 때면 저자는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한 문장을 떠올린다고 한다. 이 한 문장을 깨우치지 못하거나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 중후반전까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본다. 시인의 언어로 다듬어진 수필집의 담백함을 맛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