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 시대가 본격 시작됐다. 기술혁신 전 과정에서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기술금융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해 ‘숨은 규제’까지 걷어낸 정부는 올 하반기에 7500곳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기술신용정보로 4조원 이상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내은행의 기술평가 역량도 제고해야 하고 적정자본 유지에 따른 부담도 해소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내 은행들의 자체 평가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정책기관의 보증비율을 점차 하향 조정해 은행들의 평가 역량과 금리 결정권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기술혁신 과정에 필요한 자금 공급 = 기술금융이란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창업 초기의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원활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자금 지원 형태에 따라 기술신용보증기금(이하 기보)의 기술평가보증, 기술평가인증서 신용대출, 지적재산권 담보대출, 벤처캐피털 투자 등으로 구분된다.
올 초부터 기술평가기관(TCB) 설립을 논의해 온 정부는 이달부터 은행들이 기업에 대출을 하거나 정책금융공사의 온렌딩을 이용할 경우 기술신용정보를 활용토록 의무화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각각 500억원 규모의 기술신용정보 기반 신용대출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며 기존 기술우대 상품에도 기술신용정보를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올 하반기에만 7500여개의 중소기업이 4조7000억원에 달하는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욱이 정부는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해 ‘숨은 규제’까지 걷어냈다. 기술력을 갖춘 고등학생도 최대 3억원까지 창업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창업지원 연령을 낮추고 지식재산보증 지원 대상 제한도 폐지했다.
기술우수 창업자에 대해서는 연대보증도 면제하고, 지식재산권 담보대출 지원한도도 현행 20억원에서 50억원으로 확대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올해 하반기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기술금융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기술평가시스템을 토대로 기술력 있는 기업이 창업·성장·재기의 전 과정에서 금융이 원활이 공급될 수 있도록 규제 관행도 개선했다”고 말했다.
◇기술금융 활성화 ‘산 넘어 산’ = 그러나 기술금융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은행들의 기술금융 평가 역량을 제고시켜야 한다. 기술금융의 성공적 안착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기술만으로 미래 현금흐름을 추정하는 것은 원리금 상환의 위험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실제 국내 신생기업의 생존율은 창업 1년 후 62.5%에서 5년 후 30.2%로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하게 하락한다.
특히 기술기업의 경우 기술 모방 난이도, 시장 성장성, 기술 환경의 빠른 변화 등을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평가에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평가할 국내 은행 시스템은 미비한 실정이다. 정부가 공적인 기술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나 이를 은행들의 자체적인 시스템으로 구현하기까지는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술금융 공급 규모를 확대할 경우 은행들의 위험가중자산의 비중이 높아져 적정자본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정책기관 보증서 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는 0%다. 반면 기업 익스포저의 위험 가중치는 표준신용등급에 따라 20~150%를 적용한다.
노호영 우리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융당국은 기술금융 인프라 구축 정도를 경영실태 평가에 반영해 은행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며 “기술평가 수수료를 정부가 한시적으로 지원해 은행의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보증비율을 하향 조정하면서 은행의 가산금리 적용의 자율성을 확대해 수익성을 제고하면 국내 은행이 신규 고객을 발굴하고 융자의 저변을 넓히는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