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동반성장위원회를 해체하라."
중소상인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최근 발표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 가이드라인이 사실상 대기업들의 입김을 반영하고, 정작 중소상인들의 입장을 외면했다는 이유에서다. 중소상인들은 동반위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규탄하는 동시에, 적합업종 법제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중소상인 도·소매 적합업종 추진협의회 등은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과 이들을 대변하는 전경련은 적합업종 폐지와 무용론을 제기했고, 동반위는 스스로 적합업종 제도를 해체 내지는 약화시키는 수순을 밟는 직무유기 행태를 보였다"며 "재벌대기업을 비호하며 동반위의 역할을 포기한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전경련은 중소기업 보호 효과가 없는 품목을 적합업종으로 재지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동반위 측에 제출한 바 있다. 최근 발표된 적합업종 재지정 가이드라인에도 일부 대기업들의 요구가 반영된 부분들이 적용돼 중소기업계의 불만을 샀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도 최근 제주도에서 열린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정책토론회에서 "적합업종 가이드라인은 사실 중소기업 입장에서 합리적이면 좋았겠지만, 이번엔 조금 (대기업 쪽에) 편중되지 않았나 싶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중소상인들의 동반위에 대한 비난의 수위는 높았다. 심지어 "대기업 편에 서서 중소상인들을 기만하는 동반위라면 차라리 해체하라"는 강도 높은 발언도 나왔을 정도다. 전경련에게도 "대기업과 이를 대변하는 전경련은 더 이상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뺏어서는 안 된다"며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은 건강한 산업생태계를 망가뜨리고, 나아가 심각한 경제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대기업에 휘둘리는 자율조정의 적합업종 제도가 아닌, 법제화를 통해 강제성을 부여한 적합업종 제도다. 이에 2012년 전국유통상인연합회와 참여연대 등은 중소기업ㆍ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을 새정치민주연합 오영식 의원을 통해 청원, 발의했지만 여당과 재계의 반대로 2년째 계류되고 있는 상태다.
중소상인들은 "600만 중소상인들의 벼랑 끝에 내몰린 생존권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적합업종 제도를 법제화하는 것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며 "국회는 계류 중인 중소기업ㆍ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을 올 하반기 국회 회기내에 반드시 처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적합업종 법제화는 적합업종 제도의 기본 취지인 자율 합의 원칙을 깨는 것인데다, 과거 시행됐던 고유업종제도와도 크게 다를 바 없어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시각도 있다. 임채운 서강대 교수도 최근 '리더스포럼' 정책토론회에서 "모두를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만들기 어렵다"며 "적합업종 제도가 아직 3년 밖에 안된 시행 초기 제도인 만큼, 법제화보다 조금 더 지켜보며 보완해 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