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위기관리에 저극 나서고 있다.
재계는 위기의 징조를 사전에 감지하고 예방하는 위기관리 능력을 높이기 위해 위기관리 메뉴얼 강화에 나서고 있다.
기업환경이 갈수록 변화무쌍해지면서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이 곧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기가 기업 수익의 악화, 이미지 훼손, 생산성 저하 등의 경영 악화요인으로 발전해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기도 한다.
최근 CJ푸드시스템의 '급식사고', 코카콜라의 '독극물 협박사건', 현대차의 '장기파업', 포항 전문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불법점거 사태' 등은 기업의 치명적인 경영악화를 불러온 대형위기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삼성은 정기적으로 사장단회의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를 한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장단은 이 자리에서 환경변화에 따른 위기, 경영오류에 의한 위기, 범죄, 자연재해 등 돌발적인 위기, 해외진출시 현지의 법이나 문화.관습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위기 등 여러 유형의 위기사례와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토론한다.
삼성 전략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기업 경영의 글로벌화·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위기의 규모가 날로 대형화되는 가운데 위기에 잘못 대응하면 세계 일류기업도 순식간에 무너지는 현실을 감안해 미리부터 대응체제를 갖추기 위해 토론회를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삼성의 위기관리시스템은 정교하고 세밀한 것으로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하지만 각 단계별로 담당자가 극비로 진행되고 있어 실체에 대해 알려져 있지 않다.
삼성의 경우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그룹의 위기관리 프로세스는 총 4단계로 진행된다.
비상 연락망을 통해 리스크 발생 이유를 보고 받은 후 자체 기준에 의해 공동협의체및 테스크 포스팀을 구축한다. 이때 해당 계열사로 국한 할 것인지 그룹차원에서 공동으로 대처할 지를 평가하게 된다.
팀이 구축되면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해 일차적인 비상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후에 회사 입장을 표명하거나 해당 위기에 대한 조치를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위기 발생 원인과 해결을 위한 협의 진행 및 경영진 회의를 통해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룹이 나설 정도의 위기 상황일 경우 전략기획실에서 총괄하게 되고 이때부터 전체적인 흐름이나 컨트롤은 이학수 전략실 실장이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경우, 과거 본사 압수수색, 총수의 구속 수감사태를 거치면서 위기관리시스템을 보강 및 강화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관련 정보습득능력이 타 그룹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위기관리 시스템의 첫 단계인 예방을 위한 정보수집 단계를 가장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EO나 임원들의 언론 대처능력에 따라서도 위기관리의 효율성이 좌우된다고 보고, 경영진에 대한 '미디어 트레이닝'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대형 항공사고에 노출돼 있는 항공업계 역시 위기관리시스템을 채용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이다.
국내 대표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상시조직을 통해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사라는 특성상 항공사고 발생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항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여객본부와 화물본부별로 비상대책반을 긴급편성, 사고처리를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유가, 환율, 금리 등 세 가지 변동에 대해 유가변동은 유가관리팀, 환율변동은 재무관리팀에서 전담하면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고유가 현상이 지속되면 유가관리팀에서 40∼50개의 유가절감프로그램을 통해 위기관리를 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 유가절감프로그램은 단기적인 정책도 있지만 주로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가지고 시행하는 것"이라며 "일례로 국제선에서 외국의 기름값이 저렴한 경우 외국에서 기름을 넣는 식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환율위기가 닥치더라도 재무관리팀에서 파생상품 등의 관리로 이를 잘 헤쳐나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항공운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국내외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매뉴얼로 구성해 적절한 대응을 강구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기업경영에 위기를 도래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전략경영본부를 중심으로 각 부서에서 일정인원을 차출해 T/F팀을 구성, 경영진과 실무부서간의 가교역할을 담당한다.
또 외국항공사의 기업위기관리시스템 등을 참고해, 항공사 경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기가능성 등을 예상해 각 사안별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아시아나 항공 관계자는 "기업경영사항 악화나 국제유가 폭등, 그리고 항공사고 및 9.11 테러나 사스처럼 항공운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사항들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하지만 세부적인 대응방안 등에 대해서는 외부에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방차원의 시나리오 경영도 일상화하고 있다.
시나리오 경영이란 기업이 미래의 불확실한 경영환경 변화를 가능한 한 최대한 감안하여 향후에 전개될 변화 과정을 시나리오로 그려보고 , 각 상황에 따라 준비된 대안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경영방식을 말한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지시로 시니라오 경영을 상시화고 있다. 그룹의 주력인 석유화학분야가 환율 및 유가에 민감하고 화재 등 안전사고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경영환경에 맞춰 향후 전개될 과정을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임직원들에게 숙지시켜 사고발생시의 대처능력을 배양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해야할 사항의 나열을 넘어서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고 현장에서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을 충분히 파악해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