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국제적 신뢰성 떨어뜨리는 아베 정부의 ‘고노담화 깎아내리기’

입력 2014-06-26 11:10 수정 2014-06-2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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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종군위안부 관련 망언은 끝이 없는 듯하다. 최근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로 한·일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1993년 고노 요헤이 일본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고노담화’가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 한 것이 아닌 한·일 정부 간 협의를 통해 조율된 외교적 타협의 산물이라고 규정하는 이 보고서엔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마치 배우들이 드라마 극본대로 움직이듯 일본 극우세력은 보고서가 의회에 제출되자마자 고노담화 수정·폐기 공세를 벌이고 있다. 급기야 일본 외무성은 이 보고서의 일본어판뿐만 아니라 영문판도 누리집에 게시,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여론전에 나설 태세다. 보고서의 내용을 미국 등 외국에 적극적으로 알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국제 여론전에서 우리를 상대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의도가 훤히 보인다.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팀이 일방적 ‘검증’으로 고노담화를 심하게 폄훼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중립적 성향의 법조인·교수·학자·언론인 등 5명, 특히 이 가운데 여성 3명으로 검증팀을 구성했다고 말하지만 팀원 중 위안부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위안부 관련 망언을 일삼아 온 자를 옹호한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도 버젓이 포함돼 있다. 게다가 이 팀이 역사적 검증을 위해 모인 게 5차례뿐이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고쿠사이조호대 교수의 주장처럼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는 일본 측 입맛에 맞는 외교문서만 모아 놓은 것으로 의미 없는 종이에 불과하다.

고노담화 폄훼 논란과 관련해 폄훼, 폄하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폄하다’, ‘폄훼하다’, ‘폄하하다’는 글자꼴과 발음이 비슷해 헷갈리기 쉬운 말 중 하나다. 때문에 신문이나 방송 등에서 한자의 뜻을 몰라 잘못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누군가를 헐뜯고 깎아 내림을 뜻할 때는 ‘폄(貶)하다’를 써야 맞다. ‘폄훼(貶毁)하다’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깎아 내리는 것’의 뜻을 지닌 명사 ‘폄훼’에 동사형 어미 ‘~하다’가 붙은 형태로 ‘폄하다’와 같은 의미다.

반면 ‘폄하(貶下)하다’는 ‘치적이 나쁜 원을 나쁘게 말하여 벼슬이 떨어지게 하고 물리치는 것’, 즉 ‘벼슬을 낮추는 일’의 뜻을 지닌 명사 ‘폄하’에 동사형 어미 ‘~하다’가 붙은 말로, ‘폄하다’, ‘폄훼하다’와는 의미상 크게 다르다. 따라서 단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렵고 헷갈리기 쉬운 한자말 ‘폄하다’, ‘폄훼하다’ 대신 ‘헐뜯다’, ‘깎아내리다’ 등 쉽고 뜻이 바로바로 전달되는 우리말을 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베 정부가 ‘고노담화 물타기’로 대놓고 도발한 만큼 우리 정부는 강력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실태 백서 발간으로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물론 이번 일로 또다시 상처를 입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한 진심어린 사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국가 간 비밀 사항인 외교적 대화를 공개함으로써 상호 신뢰의 국제관례를 저버린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정상적 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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