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이틀전 1020원선이 붕괴되자 세자릿수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외 기관들이 최근 원·달러 환율 예상치를 900원대까지 속속 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 통화 절상률은 주요 17개국 중 최고 수준이다. 이에 따라 가파른 원화값 상승이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등 경기회복세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크레디트스위스와 모건스탠리 등 해외 투자은행(IB) 10여곳은 5월 이후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월 초 1050원이 붕괴된 후 이번 주 들어서는 ‘1차 저지선’으로 여겨지는 1020원 아래로까지 무너지며 2008년 8월 이후 처음으로 1010원대에서 종가를 형성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 9일 올 연말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기존 1055원에서 975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같은 날 모건스탠리도 내년 1·2분기 환율 전망치를 각각 980원, 960원으로 낮춰 잡았다. 기존 전망치는 각각 1100원, 1075원이었다. 이 기관은 올해 4분기 환율 전망치도 기존 1125원에서 1000원까지 내렸다.
BMO캐피털마켓도 지난달 27일 내년 1분기 환율 전망치를 1110원에서 990원으로, 올해 4분기 전망치는 1130원에서 995원으로 조정했다. HSBC홀딩스는 지난달 29일 내년 1분기 환율 전망치를 1030원에서 995원까지 내렸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지난 10일 ‘원·달러 환율 1000 붕괴 가시권 진입’ 보고서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 지속, 외국인 자본의 국내 순유입 기조 등을 근거로 올 하반기 원·달러 환율이 1000원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더욱 심각한 것은 원화 절상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다.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말(1055.4원)보다 지난 9일 3.7%나 절상됐다. 이는 일본 엔화와 유로화 등 주요 17개국 통화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 루피아의 달러 대비 절상률은 3.2%, 말레이시아 링깃은 2.5%, 엔은 2.4%, 필리핀과 터키 통화는 각 1.9%, 싱가포르 달러와 유로는 각 1.1%, 태국 바트는 1.0%, 쿠웨이트 달러는 0.1% 등이었다. 중국 역시 위안화 약세 정책을 구사하면서 달러화와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원화강세가 지속되면 수출기업이 많은 한국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원화값이 지나치게 가파르게 상승하면 수출 기업의 경쟁력과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관광수지 적자 폭을 확대해 내수 경기에도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