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기동력과 패기를 앞세운 붉은 유니폼 선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를 주도했다. 압박수비와 속공은 마치 벌떼를 연상시킬 만큼 빠르고 위협적이다. 붉은 유니폼의 주인공은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2-0 승리로 장식한 한국 축구 대표팀이다.
붉은색은 한국 축구 대표팀의 트레이드마크다. 시대가 변해도, 강산이 수차례 변해도 붉은색 유니폼은 변하지 않았다. 해방 후 첫 국제대회 출전이던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도 붉은색 상의에 흰색 하의를 입었다. 태극기와 투지를 상징한 것이다.
대표팀의 유니폼 변천은 월드컵 도전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처녀 출전이던 54년 스위스월드컵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아시아 대표로 출전했지만 헝가리에 0-9, 터키에 0-7로 패하면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그러나 세계의 높은 벽은 축구 실력만이 아니었다. 선수들의 유니폼도 타국 선수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메인 컬러인 붉은색은 비만 맞으면 염색이 번져 핏물처럼 흘러내렸다는 일화도 있다.
32년 만에 본선에 오른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는 상하의가 전부 붉은색이었다. 목선과 양쪽 소매 끝부분에 흰색으로 포인트를 줬지만 디자인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는 홈 유니폼과 원정 유니폼이 별도로 제작됐고, 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메인컬러가 붉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었다. 붉은색 유니폼이 오히려 상대팀에게 투지를 자극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모던한 디자인에 다양한 기능성이 가미됐다. 쿨 모션 소재를 사용해 사상 첫 두 겹 유니폼이 소개됐고, 체온조절·통풍기능 등이 강화됐다. 특히 가슴에는 태극기를 대신해 대한축구협회(KFA) 마스코트인 백호가 새겨졌다. 2010년에는 기능성·디자인뿐 아니라 친환경이라는 요소가 더해졌다. 플라스틱 병을 녹여 만든 새로운 섬유로 기존에 비해 30% 이상 에너지 소비를 감소시켰다.
210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3경기 중 2경기는 흰색 유니폼을 입는다. 역대 월드컵 성적에서 붉은색 유니폼 성적이 3승 4무 8패(승률 33.3%)였던 반면 흰색 유니폼 성적은 2승 4무 3패(승률 44.4%)로 다소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은 “많은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에) 뛸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지금 기억해보면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 첫 대표선수로 선발돼 입은 유니폼과 2002년 한·일 월드컵 유니폼이 가장 큰 영광이었다”고 전했다.
프로야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으로 의류 브랜드의 유니폼 후원이 본격화됐다. 관중의 증가가 유니폼 매출 증대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구단과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관중이 크게 늘면서 매출 증대와 유대감 향상이라는 두 토끼를 잡았다.
여성 선수들의 유니폼은 점점 과감해졌다. 테니스, 육상, 배구 등 일부 종목에서는 비키니를 연상케 하는 섹시 유니폼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유니폼의 섹시화 작업을 주도한 것은 세계육상경기연맹(IAAF)이다. 섹시마케팅의 일종으로 TV와 신문이 여성의 섹시한 모습과 강한 이미지를 원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테니스 여자 선수들의 치마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경기 중 속옷이 드러나는 민망한 사진도 심심찮게 외신에 등장할 정도다.
그러나 이 같은 섹시 유니폼은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를 방해하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영국의 복싱 챔피언 캐시 브라운은 “흥행을 위해 섹시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압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여성은 아직도 경기력만으로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