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청해진해운
그 중 32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영호 사건이 대표적 여객선 침몰 사고 사례로 꼽힌다. 이는 1970년 12월 15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포항에서 출항한 부산~제주 간 정기여색선인 남영호가 침몰한 사건이다.
남영호는 1970년 12월 14일 오후 5시경 서귀항에서 승객 210명과 연말 성수기용 감귤을 싣고 출항해 성산항에서 승객 121명과 화물을 더 싣고 밤 8시 10분경 부산을 향해 출항했다.
선박회사 측은 3개의 화물창고가 모두 감귤 상자로 채워지자 선적이 금지된 앞 하창(荷倉) 덮개 위에 감귤 400여 상자를 더 쌓아 실었고 중간 갑판 위에도 감귤 500여 상자를 쌓아 실어 서귀항을 출항할 때부터 이미 선체 중심이 15도쯤 기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태에서 성산항에 도착하자 다시 화물을 더 실었던 것이다.
이후 남영호가 성산항을 떠난 지 5시간 25분이 지난 새벽 1시 20분경 전라북도 상일도 동남 28마일 해상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심한 바람이 남영호 우현 선체에 몰아치더니 갑판 위에 쌓아 놓은 감귤 상자가 갑판 좌현측으로 허물어졌다. 이 순간 중심을 잃은 선체가 좌현으로 넘어지면서 선체가 기울면서 중심을 잃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긴급구조신호(SOS)를 타전했으나 해상 부근 어느 무선국에서도 이 조난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다. 당시 이 남영호는 정원이 290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승객 311명과 선원 20명 등 331명을 태워 정원보다 41명이나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영호가 출항하기 전날까지 폭풍주의보가 발효돼 4일간 제주 지역에 묶여 있던 승객과 감귤 등 화물 400톤 이상을 무리하게 실은 것이 화근이었다.
또 남영호의 침몰 원인으로 무리한 운항 과실과 함께 낙후된 선박 시설 및 기관, 무전시설 등이 꼽혔다. 게다가 이를 단속해야 할 경찰과 해운 당국의 감독 소홀로 인해 발생한 인재였다.
이 사고로 남자 6명, 여자 6명 등 총 12명만 살아남고 319명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