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문헌들을 찾아봤다.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은 역시 인격 장애에 잘못된 양육방식이다. 그러나 그 뒤에 바로 빈곤, 실업, 열악한 주거환경 등의 사회경제적 변수들이 따른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의 한 보고서는 영국의 경우를 들어 가장 못사는 계층의 아동 중 학대로 병원에 입원한 아동의 비율이 가장 잘사는 계층 아동의 8배가 된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빈곤과 이를 유발하는 변수들을 중요한 원인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 보건복지부의 통계 또한 같은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경제위기 이전에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한 해 1500명 정도, 아동 10만명당 4.1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경제위기 시기인 2007년 이후 3년은 약 1700명, 아동 10만명당 4.7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서 다시 4.3~4.5명으로 떨어지고 있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흔들리는 성장 기반에 날로 심해지는 양극화, 취약한 사회안전망과 실업에 대한 끝없는 불안, OECD 국가 최장의 노동시간 등 결코 온전할 수 없는 우리네 형편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데이터를 들이밀며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실업률은 4% 이하. 8% 안팎의 OECD 평균 실업률보다 크게 양호하다. 양극화나 경제적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0.31 정도로 OECD 평균 수준에 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실업률만 해도 그렇다.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나라 같으면 실업에 머물 여유와 이유가 있다. 실업급여도 있고 재훈련·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르다. 실업은 말 그대로 실업이다. 먹고살 길이 없으니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치킨집이라도 내는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억지 취업이다. 경제인구 중 자영업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26~27%, OECD 평균인 15~16%의 1.6~7배가 되는 이유다.
너나없이 뛰어드는 일이 제대로 되겠나. 한 해 치킨집이 7000개 생기고 5000개가 문을 닫는다. 닫지 않고 버티는 것이 한 해 2000개, 5년이면 1만개가 늘어 서로를 죽인다. 문을 열어도 닫아도 빚과 시름은 늘어간다. 4% 미만의 실업률에 이런 현실을 반영할 리 없다.
지니계수 또한 마찬가지다. 소득불평등만 반영하지 집이나 땅과 같은 자산 불평등은 반영하지 않는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반영하면 0.7 이상 된다는 주장도 있다. 혁명이 일어나도 두 번쯤은 일어날 수치다.
불안과 좌절 그리고 박탈감과 분노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만들어 내는 광기가 방어능력 없는 아이들을 재물로 삼고 있다.
지난해 신고된 아동학대 건수가 1만3000여건, 38분에 한 건꼴이란다. 하지만 이것은 신고된 숫자일 뿐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아동학대의 범위를 제대로 잡고 신고문화가 제대로 정착돼 있다면 그 몇 십 배가 될지 모를 일이다. 참고로 우리만큼이나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심한 미국의 경우 10초마다 1건이 신고된다. 우리 인구로 치면 1분에 1건꼴이다. 이런 나라와 얼마나 다를지 의문이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울산 사건과 칠곡 사건을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가해자나 재판부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사회경제적 원인과 처방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다. 법원 판결에 대한 공분 때문인지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논의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모습은 참으로 한심하다. 당면 과제인 지방선거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지역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 즉 분권과 자율의 질서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 지방자치의 문제도 공동체의 문제도 없다. 올바른 공약 하나 없이 이기고 지고의 문제에 매달린 채 표만 달라 외치고 있다. 광기다. 또 하나의 광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