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임원 연봉공개의 후폭풍이 금융권에서 퇴직금의 적정성과 형평성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퇴직금 산정의 결정적 요소인 누진율에서 최고경영자(CEO)가 일반 직원의 4~5배에 달해 샐러리맨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뚜렷한 기준 없이 CEO의 영향권에 놓인 이사회에서 거액의 퇴직금 지급을 결정하거나, 회사 형편과 무관하게 퇴직금을 두둑이 챙겨 나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퇴직금만 160억원' 어떻게 나왔나
3일 금융권에 따르면 박종원 전 코리안리 대표는 퇴직금으로만 159억5천700만원을 받고 지난해 회사를 떠났다.
박 전 대표가 받은 퇴직금은 이 회사 직원 1인당 평균 급여(6천500만원)의 245.5배에 달한다.
오너 경영인도 아닌 박 전 대표가 어마어마한 퇴직금을 받은 '비결'은 오랜 재직기간에 높은 누진율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15년간 대표직을 유지한 박 전 대표는 퇴직금 산정에서 일반 직원의 약 4배에 달하는 누진율을 적용받았다.
코리안리는 직원에게 매년 월 통상임금의 1.2배를 퇴직금으로 쌓는 데 비해 상무는 2배, 전무는 3배, 사장은 4배를 적립해준다.
코리안리 관계자는 "2009년에 사장과 임원의 누진율을 대폭 낮췄다"며 "2012년 역대 최고의 실적도 (160억원의 퇴직금을) 가능케 했다"고 해명했다.
이런 해명과 달리 사장·임원보다 직원의 누진율이 더 낮아졌다. 과거 코리안리의 퇴직금 누진율은 직원 2.2배, 상무 4배, 전무 5배, 사장 6배였다.
임직원의 퇴직금 불평등은 특수보험사(재보험사)인 코리안리만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예가 구자준 전 회장이 42억2천만원의 퇴직금을 받고 물러난 LIG손해보험이다.
LIG손보의 경우 직원에 대해 누진율 1을 적용하는 것과 달리 사장은 4를, 부회장은 4.5를, 회장은 5를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생명보험의 경우 임원 간 차이는 없지만, 직원에게 누진율 1을 적용하고 임원에게 3을 적용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퇴직금 산정에는 회사에 대한 기여도를 고려하는데, CEO와 직원의 기여도를 동등하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직원의 기여도는 급여 격차에 이미 반영됐으며, 여기에 누진율까지 달리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예우'라는 견해도 있다.'
◇"회사는 이 지경인데…" 퇴직금 먹튀 CEO
하영구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 겸 한국씨티은행장은 지난해 연봉으로 29억원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4대 금융지주 회장의 연봉보다 많다.
그의 연봉에는 상여 11억8천만원과 이연지급보상 7억7천만원이 포함됐다. 성과에 따른 '상여'와 '보상'으로만 20억원 가까이 추가된 셈이다.
하 회장은 퇴직할 때 막대한 퇴직금을 추가로 챙길 것으로 보인다. 그는 5차례 연임하면서 13년간 은행장을 지낸 '최장수 행장'으로, 임기도 아직 2년 남았다.
하 회장이 이끄는 씨티은행의 실적을 보면 당기순이익은 1년 새 1천903억원에서 733억원으로 60% 넘게 줄었다.
씨티은행은 올해에만 수백명의 감원과 추가 점포 감축이 예고됐으며, 공석인 부행장 3명의 후임도 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은행권 관계자는 "하 회장의 막대한 성과보수는 은행의 실적과 동떨어진 느낌"이라며 "직원을 내보내고 점포를 줄이는 것을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회사의 사정과 무관하게 막대한 퇴직금을 받은 사례에 해당된다.
김 전 회장은 별도의 퇴직금 규정이 없던 2012년에 물러나면서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특별퇴직금 35억원을 받았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외환은행 인수 등 하나금융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퇴직금이 정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재직 시절 구속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을 돕기 위해 하나캐피탈이 무리한 투자를 강행하는 데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금융당국의 징계가 예고됐다.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은 지난해 6월12일 중도 사퇴하면서 급여·상여 5억7천300만원, 퇴직금 1억1천600만원, 주식 5천833주를 챙겼다.
국민은행의 연이은 부정·비리가 불거지자 민 전 행장은 같은 해 11월 이들 성과급을 반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선 '공수표'를 날린 셈이 됐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민 전 행장은 당시 '자신이 책임질 일이 있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