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대중에게 상당 기간 노출된 정치인일수록 새로운 이미지 창출은 어렵다. 많은 국민들은 이미 그 정치인에 대해 고정된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치 신인들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 쉽다. 유권자들이 이들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이들은 인지도가 낮아 애를 먹는다. 한마디로 인지도와 새로운 이미지 구축의 용이성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그런데 요즘 6·4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황식 전 총리의 행보를 보면 이미지의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경선 룰에 대한 노골적 불만을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전 총리의 경우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는 그만큼 쉬울 수 있었다. 그리고 초반 인지도는 낮았지만,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되면서 인지도 올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김황식 전 총리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보다 쉽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입장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김 전 총리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 경선 룰에 관한 태도나 경선 경쟁자인 이혜훈 최고위원을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비교하는 걸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경선 룰을 둘러싼 마찰은 어느 정당이나 있기 마련이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도 창당 작업 등으로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 공천 경쟁이 본격화되면 시끄러워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시끄러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에 있다. 즉 대처 방식에 따라 당의 이미지도 달라지고 경선에 참여하는 후보들의 이미지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김황식 전 총리는 정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치 신인답지 않은 대처 방식을 택했다. 과거 우리는 경선 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경천 불참을 시사하며 칩거에 들어가는 정치인을 심심치 않게 봐 왔다. 물론 이들 모두 다시 경선에 참여했다. 한마디로 경선 불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 번의 컷오프가 있었음에도 다시 한번 컷오프를 하자는 김 전 총리 측의 입장은, 룰을 잘 지키는 행정가의 면모를 부각시켜야 할 입장에선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행정 관료는 룰이 어떻게 되든 일단 그 룰을 따르는 것을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대응은 행정가로서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정치 신인으로서의 참신함을 없애는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또 한 번의 실수도 범했다. 바로 이혜훈 최고위원과 이정희 대표를 비교한 점이다. 물론 김 전 총리는 유력 경쟁자인 정몽준 의원과의 양자 토론이 3자 토론보다 훨씬 좋다면서 이런 비유를 든 것이었다. 다만 이런 비유는 제대로 된 비유도 아닐뿐더러 권력을 위해선 경쟁자를 서슴없이 비하하는 기존 정치인 뺨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어서 결코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이미지 전략이라고는 볼 수 없다. 더구나 이런 실수를 저질렀으면 바로 사과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도 없었던 걸 보면 김 전 총리는 실수만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김황식 전 총리는 이런 상황을 스스로 만듦으로써 인지도는 높였을지 모르지만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 구축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구축된 부정적 이미지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서둘러 규칙에 승복하고 타인을 배려해 때로는 손해 보고 희생하는 본래의 행정가적 이미지를 다시금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만 출신지역이 호남이라는 장점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친박(친박근혜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자신을 위한 투쟁을 한다는 이미지만 보여주면 본인을 위해 결코 이로울 것이 없다는 점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