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연쇄적인 계열사 사업 재편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은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계열사 간 사업 구조조정을 돌입했다. 제일모직은 패션사업을 삼성에버랜드로 이관했고, 삼성SDS는 삼성SNS를 합병했다. 보안업체인 에스원은 삼성에버랜드의 건물 관리사업을 인수했다. 삼성테크윈은 반도체 부품사업부(MDS)를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삼성이 최근들어 이처럼 사업을 과감히 쪼개고 떼어내 붙이고 있는 것은 최대 과제인 ‘한계 돌파’를 위한 정지작업으로 풀이된다.
31일 전격 발표한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 결정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것으로 해석된다. 합병회사의 사명이 삼성SDI로 결정되면서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인 제일모직은 60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전통’보다는 ‘미래’를 선택한 셈이다.
1970년 설립된 삼성SDI는 흑백 브라운관 사업으로 시작해 2002년 신규 사업으로 배터리 사업을 추가했다. 불과 10년만인 2010년에 소형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하는 등 에너지 회사로 변신에 성공했다. 현재는 삼성의 신수종 사업인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또 1954년 설립된 제일모직은 직물사업을 기반으로 1980년대에 패션사업, 1990년대에 케미칼 사업, 2000년대에는 전자재료 사업에 차례로 진출하는 등 혁신을 거듭해 왔다.
오는 7월 합병이 완료되면 삼성SDI는 연 매출 10조원, 자산규모 15조원의 거대 계열사가 된다. 직원도 1만4000여명에 달한다. 이날 삼성SDI는 오는 2020년 연 매출 29조원 이상의 거대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이번 합병에 대해 업계는 삼성전자의 소재·부품 수직계열화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회사인 삼성SDI(부품)가 제일모직(소재)을 합병해 전자부문의 수직계열화가 이뤄진 것이다. 삼성SDI 측은 제일모직이 보유한 배터리 분리막과 다양한 소재 요소기술을 내재화해 배터리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상진 삼성SDI 사장, 조남성 제일모직 사장도 사업 간 시너지를 강조했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그룹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삼성전자는 1, 2대 주주가 국민연금, 한국투자신탁운영인 제일모직을 자연스럽게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효과를 보게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합병을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겸 삼성에버랜드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 등 3세 사업 승계 구도가 더욱 구체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