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던 동부·한진·현대그룹 등 대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고 있다. 당초 금융당국은 1분기 안에 대기업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부실 덩어리인 중견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기업, 채권은행 간 입장차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해 결국 ‘3월 데드라인’을 넘기게 됐다.
앞서 금융당국은 이들 기업에 대해 조속한 시일 내에 자구책으로 제시한 자산 매각에 적극 나서라고 최후 통첩을 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은 막무가내식 압박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책도 없이 보여주기 실적에만 급급할 수 있다며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구조조정 칼 자루를 쥔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 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시간에 쫒기는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인수 희망자가 없다” =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이유는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STX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이번에는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금융시장 불안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다.
STX그룹에 대한 구조조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달 말까지 STX유럽 매각을 위한 실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오는 6월 본격적인 매각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다음달 중 투자안내서 작성·배포, 매각 개시를 하며 6월까지 매각을 완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실사 결과가 나오는 데로 STX유럽의 매각 가격을 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구체적인 매각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동부·한진·현대그룹의 구조조정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산 매각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마땅한 인수 희망가 없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대상인 A사 관계자 “금융당국과 산업은행 관계자가 그룹 회장까지 직접 만나 자산 매각을 독촉하고 있다. 이는 기업 입장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처사”라며 “금융당국도 시장 상황이 나빠 인수희망자가 없는 상황을 알면서도 계속 압박하면 헐값 매각을 하라는 건지 의구심이 간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리스크 확대 우려 = 앞서 동부, 한진, 현대그룹 등이 알짜 계열사와 핵심자산을 팔겠다는 자구책을 밝혀지만 3개월이 지난 현재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가장 먼저 자구안을 밝혔던 동부그룹은 동부익스프레스를 포함해 주요 계열사인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발전당진 지분 등을 매각해 3조원을 마련하겠다는 자구계획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5개월 동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현재 동부익스프레스를 사모펀드인 KTB 프라이빗에쿼티(PE)에 약 3000억원에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초 기대했던 6000억원대 매각가에서 현저히 떨어진 수준이다. 여기에 1조2000억원대로 추정되는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산업은행이 포스코와 동국제강, 유니온스틸 등 관련업계에 인수를 제안했지만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고 있다. STX와 동양그룹 사태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총 1조원에 달하는 대형 매각 물건인 현대그룹 금융계열사(현대증권·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의 매각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우리투자증권과 동양증권 등 증권사 매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원매자 찾기에 난항을 겪고 있다. 희망 매각가 역시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한진해운 리스크도 산업은행 입장에선 큰 악재다. 최은영 회장 독자경영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체제로 전환됐지만 뚜렷한 재무개선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13일 한진해운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떨어뜨렸다. 지난 2011년 389.7%였던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1,444.7%까지 급등해 있다.
한편 한국기업평가가 동부·한진·현대그룹이 3개월 내로 자구계획의 실질적 성과가 없을 경우 등급조정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봉균 기업본부 팀장은 “(현대·한진·동부그룹은) 주력사의 펀더멘털이 손상됐고 업황 회복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차입금 만기구조의 단기화가 진행되고 있어 유동성 위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