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家)의 여인들이 180도 변했다.
결혼후 남편의 외조에 머물거나 미술관 등 문화사업 등에만 국한돼 대외활동을 벌이던 재벌가 여성들이 당당히 경영자로 올 한해 성공적인 변신을 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재벌가의 여성 젊은 피로 불리는 이른바 '3·3·3'(트리플 쓰리) 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트리플 쓰리'는 재벌 3세로, 30대이자 3명의 대표주자를 지칭한다.
재벌 가의 '트리플 쓰리'는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여성이 가진 섬세함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분야에 뛰어들어 경영자로서의 입지를 점차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트리플 쓰리'의 맏 언니는 올해 35살인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 둘째는 한 살 어린 장선윤 롯데백화점 이사, 그리고 막내는 33살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이다.
이부진 상무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맏딸이며, 장선윤 이사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외손녀이자 신영자 롯데쇼핑 총괄부사장 딸이다. 정유경 상무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딸이다.
이 여성 3인방들은 섬세한 감각과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한 호텔, 유통 등의 분야에서 포진돼 실무적인 부분을 꼼꼼히 챙기면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30대 초중반의 젊은 신세대이다 보니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자신이 맡은 사업현황에 대해 때론 언론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적극적이다.
3인방 가운데 올 한 해 가장 바쁘게 뛰어다녔다는 평가를 받는 이는 단연 장선윤 롯데백화점 해외 명품 당담 겸 에비뉴엘 담당 이사다. 장 이사는 올해 대중 지향의 롯데 백화점과는 별개의 명품 백화점 에비뉴엘을 오픈하고 안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룹 내에선 에비뉴엘의 탄생은 모친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과 장 이사의 합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장 이사가 직접 해외를 돌며 루이비통, 샤넬, 카르티에 등의 코 대 높은 명품회사들을 설득시켜 에비뉴엘에 입점 시킨 수완을 발휘했으며, "에비뉴엘이 장사가 안 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자 직접 언론과의 간담회를 가지며 해명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기존 재벌가 여성들과는 선을 긋는 행동을 보여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 이사가 백화점 경영에 뛰어든 것은 어머니 신 부사장과 소위 '코드'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신 부사장은 전 남편인 장오식씨와의 사이에서 혜선, 선윤, 정안, 막내아들 재영 등 1남 3녀를 뒀다. 이 가운데 큰 딸 혜선씨는 일체 그룹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둘째인 장 이사와 셋째(롯데 백화점 잡화팀 팀장)가 롯데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 에비뉴엘 개점으로 장 이사가 신 부사장의 뒤를 이어 롯데 백화점을 맡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장 이사가 롯데 백화점의 후계자로 낙점을 받기 위해선 풀어야할 숙제가 있다.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지난 9월 기자 간담회에서 "에비뉴엘의 실적이 솔직히 아쉽다"라고 언급했듯이 예상보다 매출실적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한때는 하루 매출이 2억원이 안될 정도로 이름 값을 못했지만 현재는 꾸준히 3억 원 정도를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장 이사는 에비뉴엘을 하루 빨리 본궤도에 올리며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장 이사가 파티까지 열면서 언론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이라면 범 삼성가의 3세들인 이부진 상무와 정유경 상무는 노출의 최대한 자제한체 경영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는 언론의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삼성가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으러 풀이된다. 둘 다 경쟁관계인 호텔 업계에 있다보니 외형적으로 드러냈고 사업을 펼치기보다는 내실을 다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 범 삼성가 여성 3세들, 외형 보다 내실 경영 치중
실제로 총 2676억원의 주식을 보유하며 올 해 여성 주식 부호 3위를 차지한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는 올 한해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입지를 닦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신라면세점을 리모델링해 명품 브랜드를 많이 유치·확대했고, 호텔 지하의 아케이드 역시 고급 브랜드로 메웠다.
수익이 나지 않는 브랜드는 없애고 신규브랜드를 입점하여 매출증대에 힘쓴 결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성상성과 수익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기존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한편 돈이 되는 신규 사업에 속속 진출한 결과다. 이 상무의 특히 면세점부문의 강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경영전략담당 상무보였던 이 상무가 올 초 정식 상무로 승진할 수 있었다.
오빠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빛이 바란 듯이 보이지만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도 자기 영역에서 올 한해 확고한 위치를 점유했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평이다.
현재 프로젝트 실장인 정 상무는 자신의 전공인 디자인 부문에만 관여하고, 업무가 있을 때만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호텔쪽 보다 관심을 갖는 분야는 따로 있다. 바로 베이커리 사업부다.
정 상무는 조선호텔에 적을 두고 있지만 사실 조선호텔의 베이커리 사업부문인 데이앤데이 사업에 더 열중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데이엔데이의 지분을 40%나 사들이면서 조선호텔에 이어 2대주주로 등극했다.
데이앤데이는 올해 조선호텔의 베이커리 사업부문만을 따로 독립시켜 만든 법인. 조선호텔의 사업부문에서 가장 알짜배기라는 것이 관련업계의 주장이다. 결국 정 상무에게는 조선호텔 및 이와 연관된 사업부문에 대한 경영을 맡기면서 자연스럽게 재산 분할이 함께 시작됐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이부진 상무와 정유경 상무는 범 삼성가라는 것과 함께 공통점이 적지 않다. 둘 다 호텔업에 몸담고 있고 남편을 재벌가나 명망가가 아닌 ‘평범한 집안’에서 골랐다는 점이다. 연세대 아동학과를 나온 이 상무는 지난 99년 8월 삼성 계열사에 근무하던 임우재 현 삼성전기 상무보와 결혼했다.
또한 미국 로드아일런드대 디자인과를 나온 정 상무는 지난해 2월 벤처기업에 근무하던 초등학교 동창관계인 문성욱씨와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는 이들이 그만큼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반증인 셈이다.
재계에선 가부장적인 색채가 짙은 재계에서 올 한해 이른바 트리플 쓰리의 행보가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는 데 이견이 없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