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사장은 또 “요즘 수신료 문제로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왕가네 식구들’ 얘기를 많이 한다”며 “막장 없이 할머니, 아버지·어머니, 자식들 3대를 아우르는 훈훈한 이야기로 시청률도 50%를 넘보고 있어 수신료의 가치를 전하는 대표적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이런 좋은 드라마를 계속 만들기 위해 수신료 인상에 힘쓸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왕가네 식구들’을 좋은 드라마로 평가한 것은 사적 차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수신료 인상을 얘기하는 것은 지극히 공적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과연 시청률이 50%를 넘보고 있다는 것으로 그것을 대중의 정서라고 읽어낼 수 있는 일일까.
사실 수신료 문제는 높은 시청률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즉 공영방송의 수신료를 내는 이유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좋은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얘기지, 상업적 방송을 추구하라는 얘기가 아니라는 거다. 결국 대중이 생각하는 좋은 방송이란 시청률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쩐 일인지 시청률만 높으면 다 좋다는 식의 ‘시청률 지상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공영방송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정도라면 아예 상업 방송을 기치로 내건 타 방송사나 케이블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MBC 월화 사극 ‘기황후’는 초반부터 고려의 내정을 농단했던 기황후라는 역사적 인물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었다. 물론 요즘의 사극은 역사보다는 상상력을 더한 허구의 스토리에 더 집중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적 내용을 바꾸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된다 하더라도 중요한 건 역사의식마저 훼손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역사적 인물을 이렇게 사극으로 먼저 다루면 마치 그것이 실제 사실인 것처럼 호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기황후’ 제작진은 그녀가 황후가 되는 과정까지만 그리고 그후의 행적들은 다루지 않을 거라고 했다. 또 정치적 상황보다는 인물 간의 멜로가 중심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더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황후가 된 후의 잘못까지를 다루지 않는다면 이 인물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처럼 첨예하게 벌어졌던 ‘기황후’에 대한 논란도 결국 시청률이 25%대에 이르자 흐지부지돼 가는 상황이다. 이제는 오히려 ‘기황후’라는 사극에 대한 호평을 담은 기사들이 더 많이 쏟아진다. 물론 드라마적으로 ‘기황후’는 호평받을 만한 완성도를 보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식의 부재를 보여주는 이 작품이 더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본래 역사의 반역이란 무지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똑똑해서 생기는 일이 아닌가.
오로지 시청률, 시청률이다. 이제는 식상하게마저 느껴지는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표현이 일상화돼 버린 현실 속에서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게 됐다. 일종의 불감증에 빠져버린 것이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것이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자극들이 점점 더 강도를 높여 가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거기에 익숙해져 가고 있고 심지어 비판마저 식상해하고 있다. 서서히 끓는 물에 담겨진 쥐처럼 지금 시청률이라는 서서히 데워지는 잣대에 우리는 자신도 모른 채 적응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리게 될 시청률 지상주의의 덫이 끔찍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