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기약 없는 시간이 60여년…. 명파리는 실향민의 마을이다.
바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7번국도를 따라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명파리로 향한다. 밀려드는 파도 소리에 언젠가 들었던 전북 전주가 고향인 강릉의 한 방송국 라디오 DJ의 멘트가 생각난다.
“같은 동해라도 강릉이나 삼척쪽 바다와 속초나 고성의 바다는 느낌이 많이 달라요. 바다가 없는 곳에서 자란 저는 처음 강릉으로 오고 나서 바다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마냥 좋았어요. 그런데 북쪽으로 가서 보니 바다의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더라고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기억 속의 멘트를 생각하면서 북으로 향할수록 바다에서는 묘하게도 외로움의 내음이 전해졌다.
한 아낙네가 도로변에서 끈에 묶은 오징어를 흔들고 있다.
‘빙글빙글’ 지나는 차량들을 향해 연방 인사를 하며 오징어를 돌린다. 한쪽에는 반건조 오징어를 한가득 쌓아둔 채로….
명파리 초입에 위치한 이곳은 ‘일심이네’라는 곳으로 이렇게 오징어를 돌리며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
사실 이곳은 방송에도 소개될 만큼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벌이가 예전 같지 않다.
금강산 관광이 기약없이 중단되고 통일전망대도 관광지로서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관광객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오징어를 돌리는 손길에는 흥이 사라졌다.
동해안 최북단 마을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농토의 80%는 민통선 안에 있다. 새벽 5시 50분이 되면 빨간 깃발을 꽂은 차량들이 꼬리를 문다. ‘영농출입’ 이라고 쓰인 빨간 모자를 쓰고 초소를 통과해 민통선의 일터로 들어간다.
1995년 이전에는 명파리 전체가 민통선 내에 속했다. 그때는 친인척이라도 갑자기 찾아오면 못 들어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주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4차례의 검문소 이전 끝에 지금에 자리에 터를 잡았다. 명파리 주민들은 늘 분단 상황에 있다.
명파리도 활기를 띠었다.
2003년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시작되면서 마을에도 관광객을 상대로 한 식당과 특산물 판매점 등이 생겨났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때 하루에 1000여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그러나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피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재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명파리는 사람의 발길이 끊겨 썰렁한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명파리에서 장사를 시작한 주민 중 일부는 빚더미에 앉았다. 곳곳의 음식점과 특산물 판매점들이 문을 닫아 흉가처럼 방치되고 있다.
한적한 마을을 벗어나 도착한 명파해변 입구에서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오수를 즐기는 견공들이 반겨준다. 자그마한 주차장을 가로질러 바닷가로 향하자 갈매기가 거친 파도 위로 날갯짓을 하고 있다. 걸음은 그곳에서 멈췄다. 백사장을 둘러싼 철조망은 그 만큼의 모습만을 허락했다. 금강산 관광으로 단 몇 년간만 허락됐던 명파리 주민들의 웃음처럼….
2008년 눈 내리던 겨울 명파리와 남북출입사무소를 거쳐 금강산을 방문했다. 당시 금강산 구룡계곡은 눈으로 뒤덮여 겨울 금강산의 다른 이름인 설봉산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그 겨울 금강산의 풍광처럼 명파리에도 희망의 서설이 내리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