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항공업체가 거추장스럽고 이미지와도 걸맞지 않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이라는 이름을 떼내고 에어버스그룹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에어버스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기 전까지 15년간 회사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고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에어버스 전 임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엔지니어들만 좋아할 EADS라는 이름은 설립 초기 영국 브리티시항공우주의 합병이 무산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다. EADS는 유럽 항공우주와 방위산업의 통합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EADS라는 브랜드는 기대에 어긋나게 회사를 짓누르는 결과만 낳았다고 신문은 꼬집었다.
에어버스의 라이너 올로 홍보책임자는 “효율적인 마케팅을 하기에 EADS라는 이름은 너무 길고 헷갈린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회사 내부에서 일부 매니저들은 EADS가 질병을 연상시킨다고 반발하기도 했다고 WSJ는 전했다.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는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연합(EU)의 발족과 함께 유럽에서는 역내 산업통합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국에서도 방산업체들이 대거 통폐합하는 추세여서 시대 조류와도 부합했다.
영국 브리티시항공우주와 독일의 다임러크라이슬러항공은 지난 1998년 합병 성사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막판 영국 측은 다임러와 합병하는 대신 미국방산업체와 손잡고 브리티시항공우주방위시스템(BAE시스템)을 설립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프랑스 재벌 장 뤽 라가르데르다. 그가 이끄는 라가르데르그룹은 잡지 엘르에서부터 엑조세미사일까지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라가르데르에게 프랑스와 독일의 항공산업 통합 협상 전권을 맡겼다.
다임러와 라가르데르 측의 협상이 성공리에 끝나 마침내 EADS가 탄생했다.
당초 에어버스가 새 회사의 유력한 사명이었다. 에어버스는 1970년에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등 4국이 합작해 세운 회사였으며 당시 프랑스와 독일 지분을 합치면 75%에 달했다.
그러나 에어버스 20% 지분을 보유한 브리티시항공우주가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 하에 다임러는 새 이름으로 EADC를 제안했다. 이는 유럽항공우주방위업체(European aerospace and defense company)의 준말이다. 특히 이름에는 브리티시항공우주의 ‘aerospace’가 포함돼 영국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WSJ는 전했다.
영국의 반발을 우려한 프랑스에서 다시 항공과 우주가 모두 포함된 ‘aerospace’를 ‘항공(aeronautics)’과 ‘우주(space)’로 분리시키자고 제안해 EADS라는 이름으로 최종 결정됐다고 WSJ는 덧붙였다.
지난 2006년 EADS는 BAE시스템으로부터 에어버스 지분 20%를 사들였다. 지난해 EADS와 BAE시스템의 합병이 유럽 정치인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에 톰 엔더스 EADS 최고경영자(CEO)는 방위산업 대신 민간항공기 사업에 집중하기로 하는 의미에서 사명을 에어버스로 변경하기로 했다.
지난해 5월 연례 주주총회에서 엔더스의 계획이 승인을 받고 수개월에 거친 변경 작업을 거치면서 마침내 지금의 에어버스로 회사가 재출발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