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기 철도파업 “그나마 해 넘기지 않은 것은 다행”

입력 2013-12-3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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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넘게 계속된 철도파업은 ‘최장기’라는 오점을 남겼지만, 해를 넘기기 전 극적으로 일단락되면서 각계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철도노조는 30일 국회의 철도산업발전방안 소위원회 구성을 계기로 파업 철회를 잠정적으로 결정하고 내부 절차를 거쳐 현장 복귀 시기를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9일 철도노조가 수서발 KTX 법인 설립 움직임에 반발하며 총파업을 벌인 지 22일째다.

◇‘대화’라는 건강한 흐름 만들자

조계종 화쟁위원회(위원장 도법 스님)는 30일 "노·사·정과 정치권이 한 발짝씩 양보해 타협함으로써 철도파업이 극적으로 타결됐다"며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된 만큼 노사정이 서로 존중하고 의견을 경청하면서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낼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화쟁위는 "철도문제는 당사자인 철도 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상대를 비난하거나 법적, 도덕적 책임을 추궁하는 대신 사회통합을 염원하는 국민의 입장에 부응해 이해와 존중으로 대화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진실과 화해의 길로 흑백 갈등을 녹여낸 만델라처럼 우리 사회도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구습을 벗고 차이를 존중하며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건강한 흐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치권의 역할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강공드라이브에 노조가 물러서는 모양새가 됐다"며 "정부와 노동계의 무한 대결 구도에서 정치권이 나서 물꼬를 트는 긍정적 역할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철도노조 파업이 장기화된 이유는 시민사회단체나 국민들이 정부의 '불통'에 대한 불만이 쌓였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자신의 지지세력에만 기반해 다른 세력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찰이 민주노총에 진입한 날 박근혜 대통령은 대타협을 이야기 했다"며 "'배우자가 없는 결혼식'과 같은 상황으로 정부와 노조가 오랫동안 불신해 온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번 국회 소위를 계기로 정부와 노조가 서로 약속을 하고 이것을 지키며 신뢰를 쌍는 경험을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도 대다수의 선진국처럼 노조를 사회적 파트너로 키워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진보와 보수 시민단체와 시민들 모두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철도노조 파업 철회를 환영한다"며 "사태가 대화 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국민 불편와 노조 어려움 등을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 사무처장은 "국회에서 소위가 구성된 만큼 코레일 철도 경영 효율화 방안와 철도산업 발전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정부와 노조가 모두 한발씩 양보해 긍정적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조직실장은 "지금이라도 파업이 철회돼 다행이다"며 "쟁점이 됐던 철도 민영화에 대해 정치권이 시민들의 의견을 귀담아 조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조직실장은 "정부와 노조 모두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 파업이 장기화 됐다"며 "국회 소위에가 새로운 갈등 양산의 요소가 돼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숨가빴던 20여일

지난 9일 철도노조가 수서발 KTX 법인 설립 움직임에 반발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이 본격화하자 코레일은 김 위원장 등 노조 지도부와 적극 가담자 198명을 고소하고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과 징계, 대체인력 채용 계획 등을 발표하며 강하게 노조를 밀어붙였다.

경찰도 고소장을 접수한 즉시 이들에 대한 출석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한 노조 간부 34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는 등 강공으로 일관했다.

노조 지도부는 이에 질세라 경찰의 수사망을 뚫고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하는 게릴라식 전법을 구사하며 파업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철도파업의 하이라이트는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 진입이다.

경찰은 지난 22일 중구 정동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4000여명의 경찰관을 동원해 12시간에 걸쳐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벌였으나 수배자들을 찾지 못한 채 허탕을 치고 망신을 당했다.

경찰이 1995년 창립 이후 18년간 공권력이 들어가지 못했던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진입한 것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노동계 전체로 불똥을 확산시키는 결과만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찰은 노조 지도부를 찾으려고 체포전담조를 구성해 전국을 이 잡듯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오히려 며칠 뒤 이들은 자진해서 모습을 드려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박태만 수석부위원장과 김 위원장, 최은철 대변인이 25일부터 차례로 조계사와 민노총 본부, 민주당사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조계사 피신을 통해 종교계와 정치계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했고, 각계에 철도 민영화 저지를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파업 사태는 27일 정부가 노조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서발 KTX 법인 면허를 발급하고 다음날 민노총이 철도파업을 지지하는 총파업 결의대회를 서울광장에서 열면서 정점을 찍었다.

대규모 집회 이후 세종로 사거리가 점거됐고 길거리에는 반정부 구호가 퍼져나 오기도 했다.

파업은 이날 새누리당과 민주당, 철도노조가 철도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하는데 합의하면서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수서발 KTX 법인 설립 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대체 인력 선발도 진행 중인 만큼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양측의 강경 대립으로 파업이 길어지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KTX 등 열차 운행이 감축됐고 코레일이 관리하는 수도권 1∼4호선 열차 고장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파업 초기 대체인력 투입이 원활하지 않아 열차 운행이 파행을 겪으면서 파업 첫날인 9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정식으로 접수된 수도권 전철 고장 건수는 13건에 달했다.

15일에는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에서 80대 여성이 지하철 문에 몸이 끼여 목숨을 잃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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