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가운데 오히려 지하경제가 활성화되는 조짐이 줄을 잇고 있다.
올해 상반기 현금영수증 이용건수는 사상 처음 감소세를 보였고 지하경제의 보관 수단으로 지목받는 5만원권의 환수율은 사상 최저이며 민간소비 대비 카드 등 사용액 비중은 답보 상태다.
6일 이용섭 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국세청 자료와 한국은행, 여신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현금영수증 발급건수는 25억6천만건으로 작년 동기보다 3천700만건(1.4%) 감소했다.
2005년 현금영수증 제도가 도입되고서 전년 동기 대비 발급건수가 줄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5만원권의 환수율은 올해 1∼9월 48.0%에 그쳤다.
환수율은 5만원권이 처음 발행된 2009년에는 공급 초기여서 환수될 시기가 안 된 만큼 7.3%에 그쳤으나 2010년 41.4%, 2011년 59.7%, 2012년 61.7% 등으로 매년 상승하다가 올해 처음 하락세로 전환한 것이다.
환수율의 하락은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이 한은 금고에 돌아오지 않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전체 지폐 발행잔액 중 5만원권의 비중은 9월말 현재 66%에 달했다. 2년 전에는 53%였다.
전체 화폐 발행잔액도 9월말 63조939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8조7천595억원(16.1%) 급증했다.
지난 6년간 평균 화폐 순발행액(4조4천억원)의 거의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민간 최종 소비지출에서 신용카드 사용액 비중(기업구매카드와 현금서비스 제외)은 지난해 66.3%였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66.2%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세무당국이 민간의 지출내역을 자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신용카드, 체크카드, 현금영수증을 합친 사용액이 민간 최종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90.6%에서 올해 상반기 90.5%로 거의 변화가 없다.
통화승수나 현금통화비율 등 공식 금융통계에서도 경제 주체의 현금보유 성향 강화는 확인된다.
특히 광의통화(M2)에 대한 현금통화 비율은 지난 8월 현재 2.7%로, 작년 12월보다 0.3%포인트나 높아져 역대 최고 수준이다.
역시 5만원권 발행의 영향을 받은 2010∼2012년에는 같은 기간 이 비율 증가폭이 0.1%∼0.2% 포인트인 점에 비춰 올해 현금보유 성향은 예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올해 불거진 현금보유 성향의 강화 배경에는 정부가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추진하면서 세무당국으로부터 소득이나 지출을 숨기려는 경제 주체의 심리가 확대된 데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세원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도리어 현금거래 선호 현상이 심화되고 자산가들이 현금 형태로 재산을 보유하거나 이전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