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후선조직이 축소되기도 하고, 미래 먹을거리로 여기던 프로젝트를 가차 없이 용도 폐기한다. 기관의 정체성이 왔다 갔다 할 만큼 180도 방향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전임자 밑에서 심사숙고해 결정한 사안도 첫 출근하자마자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 새로 취임하는 경영자마다 “과거는 잘못됐다”반성문 아닌 반성문을 쓰는 것이다. 소매금융에 치중하던 은행이 수장이 바뀐 이후 도매금융에 관심을 갖는다면 얼마나 무책임한 경영인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언론도 헷갈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좋다” 고 쓰다가 어느 순간 “아니다” 라고 쓰려니 얼마나 황당하고 낮 간지럽겠는가.
방향이 맞지 않거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계획은 빨리 정리하는 게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감을 갖는 건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평론가인 이브 미쇼는 타락한 현대미술을 개탄하며 “이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절명케 해야 한다” 고 했는데, 새 수장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경영계획을 마치 타락한 현대미술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경영전문가 공병호 박사는 “화가나 음악가와 마찬가지로 경영자는 사업을 통해서 자신을 세상에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의 경영자들은 과거 부정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표현하는 것 같다.
반복되는‘부정(否定) 경영’은 조직 발전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 때만 되면 모든 게 뒤집어지거나 무효화되다 보니 경영은 맨날 그 자리다. 다른 조직은 발전하는데 그 조직만 정체돼 있다는 건 결국 퇴보한다는 얘기다. 설령 새로 내린 결정이 올바른 방향이라 해도 그간의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제로 섬’밖에 안 된다.
‘부정 경영’ 은 필연적으로 인적 청산이 동반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한다’ 는 명분을 내걸고 능력 유무를 떠나 과거 인물을 쳐낸다. 그래야만 자신을 세상에 표현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경영자가 바뀔 때마가 뭔가 하는 것 같은데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조직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국내 금융산업이 발전을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10년, 20년 중장기 비전을 내걸고 연속성을 갖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애초부터 그럴 토양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3년 정도만 있으면 경영자가 바뀌고, 다음 경영자는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하니 도무지 큰 그림을 만들 수 없다는 얘기다.
증권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증권사 CEO 중에서 정말로 증권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경영자의 잘못만은 아니다. 경영 환경이 그렇다 보니 중장기 비전을 논할 여지가 없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나그네 경영자’이기 때문에 중장기 비전의 필요성이 없다. 수수료를 최대한 낮춰서 외형을 키우고, 덤핑을 해서라도 딜(Deal)을 성사시키는 게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는 최선의 길이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다 보니 구조조정 카드에 자꾸만 손이 간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 경영’을 해서는 미래가 없다. 그나마 다른 산업은 경기가 호전되면 좋아진다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금융산업은 다르다. 내적 발전이 없으면 계속 퇴보할 뿐이다. 은행은 예대마진이나 따먹고, 증권사는 우물 안 경쟁만 해야 할 뿐 선택의 여지가 없다. 100년이 지나도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만들 수 없다는 냉소적인 시각이 팽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풀이식 경영이나 생색내기 경영을 하는 건 죄악이다. 제발 지금부터라도 생산적이고 연속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자. 그러기 위해선 정권을 잡은 권력층부터 각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