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의 대화’ 기대 무너뜨린 수석대표 격, 뭐가 문제였나

입력 2013-06-12 09:10 수정 2013-06-1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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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타국과는 문제 삼지 않지만 유독 南한테만 높은 격 요구

▲12일부터 이틀간 열릴 예정이던 남북당국회담이 수석대표의 격(格)을 두고 대립하면서 북측이 대표단 파견 보류를 통보, 회담이 무산됐다. 사진은 11일 오후 회담이 열릴 예정이던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사진=노진환 기자)
6년만의 남북회담이 11일 좌초된 것은 ‘수석대표의 격’에서 양측이 의견을 좁히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남북회담에 나올 수석대표의 급(級)을 이유로 회담이 무산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평가된다.

우리 측은 이날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북측은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각각 수석대표로 5명의 대표단을 구성하고 그 명단을 교환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 측 수석대표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고, 장관급이 안 나오면 남북당국회담 못 열린다며 일방적으로 대표단 파견 보류를 통보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실무회담에서 권한과 책임 있는 관계자로 통일부 장관을 생각하고 있으니 여기에 상응하는 (북측의) 수석대표를 보내 달라고 분명히 했는데 북한은 비정상적인 관례로 권한과 책임 없는 인사를 장관급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회담 무산 사태는 사실상 지난 9~10일 판문점에서 열린 실무접촉에서부터 예고됐다. 핵심이 되는 수석대표의 급과 의제에 합의하지 못한 채 남북이 각각 다른 발표문을 내놓았다.

북한이 끝까지 우리 측의 요구대로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을 수석대표로 내보내지 않은 것은 통일전선부장이 남측의 통일부 장관보다는 위상이 높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인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은 다른 나라와의 회담과 달리 유독 남측에게만 ‘높은 격’ 을 원하는 것은 남측의 의도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읽힌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관례처럼 북측의 요구를 들어줌에 따라 북한이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지적 또한 제기된다. 북측이 이번 회담 단장으로 강지영 조평총서기국 국장을 내세우며 남측 수석대표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요구한 것도 이 같은 과거 관행에 집착한 탓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동안 21차례에 걸친 남북장관급 회담이 남북 수석대표의 격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 이뤄진 ‘불평등한 회담’이었다는 판단으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냄에 따라 북한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핵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당이 우위이기 때문에 노동당의 통전부 2인자인 김양건 부장은 격에 맞지 않으며, 대신 조평통 서기국 국장이면 내각의 상급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고 있다”며 “수석대표의 급을 두고 남북이 의견차를 보인 것은 권력구조나 통치원리의 남북간 시각차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개최 불과 하루 전 2007년 제21차 남북 장관급 회담 이후 6년만의 남북 고위급 회담이 유례 없이 결렬된 것을 두고 남북이 형식에 치우친 자존심 싸움에 치우친 나머지 유연성을 잃은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각도 있다. 남북한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하려던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도 당장 제동이 걸리게 됐으며, 당장 해결이 시급한 개성공단 문제에도 다시 먹구름이 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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